자라섬재즈페스티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브라질 음악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제공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Hable con Ella)를 본 사람들이라면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라는 노래가 흐르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한 남자 가수가 기타와 첼로를 곁에 두고,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예민한 감각을 담아 노래하는 모습은 어쩌면 흥미로웠던 영화의 줄거리보다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난 시대의 멕시코 명곡을 젊은 세대에까지 새롭게 알렸던 그는 바로 브라질 음악 최고의 가수로 존경받아온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 74)다. 지난 리우 올림픽 축하무대에도 등장해 여전히 브라질 음악의 중심에 있음을 세계에 알렸던 그가 한국 음악팬들과 만나게 된다. 오는 10월1일부터 3일까지 개최되는 제13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마지막 메인 무대를 장식한다. 한국 팬들과의 만남을 앞둔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벨로주는 ‘브라질의 밥 딜런’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세계 음악 팬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용광로인 브라질 음악을 지칭하는 ‘엠피비’(MPB, Musica Populeira Brasileira)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1967년 데뷔 앨범 발표 이후 두 번의 그래미와 아홉 번의 라틴 그래미를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50년에 이르는 그의 음악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60년대에 시작되었던 군부 독재 정권 시절 고초를 겪었다. 당시 브라질 음악계에는 트로피칼리즈무(Tropicalismo), 열대주의라는 이름의 음악 운동이 있었다.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가사에 록 음악의 요소를 브라질 음악에 결합하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었는데, 벨로주는 이 흐름의 중심인물이었다. 군사 정권의 감시를 받다 결국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했고 이후 하루 일과를 보고해야만 하는 생활을 했다. 결국 유럽행 비행기에 강제로 올라 2년 반 동안의 망명 생활을 했다. 그 시절을 되짚으며 그는 “감옥과 망명의 시간들은 내게 큰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나의 음악 인생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했다. 마치 세상의 어떤 아픔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깊은 부드러움이 담긴 그의 노래 한 곡을 듣는 느낌을 주는 대답이었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다소 거친 트로피칼리즈무 시대와 다양한 시도를 했던 60~70년대를 지나 80년대 중반 이후 보다 온화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변모해갔다. 한국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는 곡들도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기들이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하는 것들이다.
이번 자라섬 무대에서도 벨로주 음악 특유의 온화함이 담긴 곡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주로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그동안 걸어왔던 다양한 시기의 노래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최근 그의 투어에 동행하고 있는 삼바 가수 테레사 크리스티나가 함께 올라 브라질 음악의 상징인 삼바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일 거라고 귀띔했다.
인터뷰 말미에 진부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당신이 추구하는 음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냐고. 짧지만 굵고 긴 여운이 남는 대답이 돌아왔다. “놀라움(The Surprise). 음악이라는 길은 내게 놀라움을 주어야 한다.” 그 의미는 해석하기 나름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칠순을 넘긴 이 아티스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음악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자라섬의 가을밤을 수놓을 카에타누 벨로주의 무대, 앞에서 말한 영화 속 장면 못지않은 아름다운 무대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황윤기/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