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오르페오전, 대체 극본 어디 갔나요?

등록 2016-09-28 16:15수정 2016-09-29 11:12

리뷰/국립창극단 ‘오르페오전’
이소영 연출이 극본 직접 써
개연성 떨어져 관객설득 실패
‘한국 홍보영상’ 같은 장면도
<오르페오전>은 화려한 무대에도 불구하고, 극본의 설득력이 떨어져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오르페오전>은 화려한 무대에도 불구하고, 극본의 설득력이 떨어져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야? 관객이 아둔하든지, 극본이 구실을 못하든지 둘 중 하나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오르페오전>(22~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분명 후자다. 이소영 연출이 직접 극본을 쓴 이 작품은 ‘오페라창극’을 표방했다. 결론적으로 창극도 오페라도 아닌 ‘쇼’였다. ‘창극 극본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먼저,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를 보자. 인간은 물론 짐승과 망령의 마음마저 감동시키는 오르페우스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상징이다.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체를 구하려 저승까지 간 그의 이야기는 오페라와 연극의 단골메뉴다.

여기, 이소영판 오르페우스 <오르페오전>을 보자. 올페(오르페우스)와 애울(에우리디체)이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애울이 지옥으로 떨어져 죽었다. 왜? 올페는 지옥으로 애울을 구하러 간다. 왜? 지고지순한 사랑을 빼버렸으니 어리둥절하다. 앞서 배우들은 계속 언덕을 올랐다. 왜? 신을 경배하기 위해? 높은 이상을 좇아서? 극본은 관객을 설득할 당위성과 개연성이 떨어졌다. 읽으면 5분 분량이라, 극본이라기엔 민망하다.

<오르페오전>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장면은 애울의 저승길에 등장하는 꼭두들의 춤이다. 꼭두는 상여를 장식하는 목각 인형으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존재다.
<오르페오전>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장면은 애울의 저승길에 등장하는 꼭두들의 춤이다. 꼭두는 상여를 장식하는 목각 인형으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존재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우도 잦았다. “하루를 살아도/ 너와 함께면/ 네 하루와 내 온 내일과/ 바꿀래” 같은 가사는 대중가요에서 너무 자주 들었다. 마지막 장면. 소방관, 환경미화원, 기타리스트, 주부, 학생, 어린이 등 모든 연령대의 모든 직업군이 나와 행복하게 웃었다. 마치 ‘대한민국 홍보영상’ 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천장에 걸린 방패연의 붉고 푸른 무늬가 마치 태극 문양을 연상시켰다.

이소영 연출은 이번에 자신이 직접 극본을 쓰겠다고 했다. 프로그램북 프로필을 보면,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연출한 적은 있지만, 극본을 써봤다는 얘기는 없다. 다만, 지난해 창극 <적벽가>의 극본에 손을 댔는데, 판소리 원본이 있어 각색에 가깝다. 더욱이 <오르페오전>은 황호준 작곡가의 음악이 먼저 나왔다. 작곡이 먼저 나왔다면, 전문 대본가의 섬세한 집필이 더욱 절실하기 마련이다.

이소영 연출은 극본의 빈자리에 화려한 빛과 무대장치라는 ‘쇼’를 배치했다. 그럼에도, 국립창극단의 미래는 밝다. 관객은 김준수·유태평양(올페), 이소연(애울) 등 젊은 소리꾼들의 열창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국립극장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