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에서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 김재형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예전에 시위하다가 쫓기는 학생들 숨겨주는 얘기 많잖아요. 제가 맡은 화가 카바라도시가 그런데요, 요주의 인물인 친구를 숨겨주다가 고초를 겪는 인물입니다. 별로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지만, 요즘으로 치면 정치범을 쫓는 정보기관 책임자인 스카르피아가 카바라도시의 애인인 가수 토스카를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국립오페라단이 13일 개막하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 카바라도시를 맡은 테너 김재형(경희대 교수)의 설명이다. 프랑스 혁명 직후 1800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베리스모 오페라는 파시즘 광풍이 몰아치던 1930년대 무솔리니 시대로 시간과 공간을 옮겼다. 연출을 맡은 다니엘레 아바도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아들이다. 공안통치와 혁명, 젊은 예술가 남녀의 사랑, 정보기관 수장의 치정을 뒤섞고 버무려 <토스카>에 새로운 맛을 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재형은 “지금까지 카바라도시만 14개 버전으로 출연했습니다”라고 했다. “토스카는 웬만하면 재미없게 만들기가 힘듭니다. 내용이 다이내믹한데다 인물들도 개성이 굉장히 강해, 한 사람이 못해도 다른 사람이 받쳐주거든요. 앙상블보다는 개성을 표출하는 역이 많기 때문에 좀체 망하기 힘든 작품입니다. 이번에 관점을 바꾸니까 더 재미있을 겁니다.”
서정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김재형은 자신이 부를 3곡을 설명했다. “성당에서 토스카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보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리고 나니까 똑같아요. 그 아리아가 1막에서 ‘오묘한 조화’이고요. 3막의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은 죽음을 앞두고 절절한 느낌이랄까요. 그 두 곡이 중요하고, 그다음에 토스카와의 이중창이 유명합니다.”
카바라도시 역을 많이 하다 보니 아찔한 경험도 있다. “독일 유명 극장에서 사고당할 뻔한 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2막에서 비밀경찰이 고문하는 장면으로, 천장에 매달려 고문당하는 장면인데, 장치가 고장이 나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게 됐어요. 10m 높이에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김재형은 유럽과 미국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한국 성악가다. 2006년 독일 베를린 국립극장에서 <카르멘> 돈 호세 역으로 극찬을 받았고, 이후 파리 국립극장, 빈 국립극장, 런던 로열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에서 활약했다.
앞으로 일정도 촘촘하다. 12월까지 경희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같은 달 베를린 도이체 오퍼에서 <아이다>, 로열 오페라에서 <일 트로바토레>, 1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에르나니> 등 숨 쉴 틈 없이 무대에 오른다.
김재형은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으로 ‘바그너’를 첫손으로 꼽았다. “바그너 작품 중 가장 맡고 싶은 건 <탄호이저>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안 싱어’로 낙인이 찍혔어요. ‘너는 이탈리아 것만 해라’라고 제가 되레 설득당하지요. 물론 독일 곡인 말러의 <대지의 노래>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바리톤 역이지만 테너로 키를 올려 부르고,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소프라노 역인데 테너로 소화한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짜릿했지요.”
지휘 카를로 몬타나로, 토스카(알렉시아 불가리두·사이오아 에르난데스), 카바라도시(마시모 조르다노·김재형), 스카르피아(고성현·클라우디오 스구라). 13~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8~29일 대구오페라극장, 11월3~4일 거제문화예술회관, 11월25~26일 천안예술의전당. 글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토스카>에서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 김재형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