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이야기 ‘원형’을 그대로 둔 채, 재해석을 덧붙임으로써 독창성을 획득한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수동적인 신데렐라가 아니라 적극적인 신데렐라의 엄마이다. 죽어서 요정이 된 그녀는 딸을 돕기 위해 종횡무진 마술적인 황홀경을 연출한다. 자칫 요정의 등장이 낭만발레의 진부한 재현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마이요의 안무는 어둡고 음습한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화사하고 경쾌한 삶의 세계로 안내한다. 캐릭터를 살짝 비틀어 낭만적 열정을 도처에 뿌리는 ‘팅커벨’로 바꾼 셈이다.
마이요는 진주그물에서 중요한 것이 진주보다 진주를 묶는 매듭에 있다고 생각한다. 계모와 사는 신데렐라의 아버지가 요정에게서 전처의 그림자를 느끼는데, 신데렐라와 왕자의 로맨스가 그런 감정과 대조되면서 이중 매듭이 생긴다. 특히 아버지-요정, 신데렐라-왕자가 짝을 바꿔가며 4인무를 출 때, 엇갈리는 사랑과 욕망은 흥미로운 복선을 보탠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진 전처의 옷에 집착하며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고독한 초상과 계단을 오르며 금가루 세례를 받는 신데렐라-왕자의 행복한 결합이 극명하게 갈리는 마지막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이요의 <신데렐라>의 진정한 묘미는 이야기 구조보다는 춤 자체에 있다. 관능의 리듬과 낭만적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기 때문이다. 그의 안무는 궁극적으로 ‘현재의 재현’이다. 순간순간 살아 숨쉬는 춤 리듬의 안무이자 다양한 결을 정확히 쓰는 발레의 진화. 그러니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을 완벽히 통어하면서 삶의 포자들을 날리는 춤이 가능하다. 요정의 특출난 독무, 무도회 장면의 변화무쌍한 스펙터클, 연인들의 스킨십과 오르가즘이 분출하는 장면의 정서적 충격은 무아지경이다. 특히 신데렐라와 왕자의 2인무는 떨리는 관능의 폭발로 걷잡을 수 없다. 여인의 윤곽을 양손으로 웨이브하거나 쓰다듬는 살가운 터치, 사랑 행위의 자연스러움과 환희를 폭발시키는 알싸함은 관객들을 기꺼이 빠져죽게 한다. 휩쓸려서 리듬의 바다와 하나가 되는 체험, 그것은 관객의 오랜 선망이다. 하지만 <신데렐라>에서는 현실이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발레의 딜레마를 해결한 천재이다. 그 유명한 조지 발란신도, 지리 킬리안도, 나초 두아토도 순수와 세련화 차원에 머물렀다면, 마이요에 이르러 삶의 파일을 통째로 전송하는 발레가 가능하게 됐다. 또한 가변적인 무대미술의 상상력, 의상과 조명의 엄밀성, 절묘한 금가루 뿌리기나 천의 유머러스한 사용은 그의 예술적 한계가 과연 있는 것일까 되묻게 만든다.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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