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작은신화’ 30돌을 이끈 최용훈 연출(뒤)이 정기공연 <싸지르는 것들> 공연을 앞두고 12일 서울 서강대에서 단원들과 연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2일 서울 서강대 가브리엘관 스튜디오 옆 연습실. 주인공 비더만과 소방대원들이 분주히 오가는 사이, 최용훈(53) 연출의 눈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20대 초반 13명이 시작한 극단 ‘작은 신화’가 창단 30돌 정기공연 <싸지르는 것들>을 앞두고 단원들이 서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맞춰보고 있다. 예수와 유다가 낀 12사도처럼 13명이 모여 ‘구원’의 기대와 ‘배반’의 불길함을 동시에 안고 출발한 이 극단은 이제 한국 대표 극단으로 훌쩍 성장했다.
“우리가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인 대학 4학년 때 시작했으니까 사회정의에 관심이 컸어요. 그런데 당시엔 번역극 위주라 연우무대를 빼곤 한국 현실에 관심을 둔 극단이 없었지요.”
‘작은 신화’ 대표 최용훈 연출의 말이다. 30년 세월이 물결처럼 배어 흐르는 백발 아래, 잡념을 게워낸 말간 눈이 말똥말똥하다.
‘작은 신화’의 성장 뒤에는 단원 공동창작, 창작극 프로그램인 ‘우리연극만들기’, 젊은 단원의 실험극 ‘자유무대’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연극만들기를 통해 고 윤영선, 고선웅, 최치언, 장성희, 조광화 등이 데뷔 또는 두번째 창작극을 올렸다. 고 김동현, 박정의, 조광화, 반무섭, 신동인, 이곤, 정승현 등 연출가 산실 노릇도 했다. 배우로는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장용철, 임형택, 김은석, 강일, 김문식, 정세라, 이례원, 정선철, 안성헌, 김왕근 등이 대부분 지금도 이 극단에서 활동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돐날>, <황구도>, <코리아 환타지>, <똥강리 미스터 리>, <창신동>, <토일릿 피플> 등이 있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하지만 그리운 얼굴로 돌아보라, 그리하여 다시 성난 젊은이로 돌아가자. 극단 작은신화 30돌을 이끈 최용훈 연출은 12일 서울 서강대 교정에서 “다시 젊을 때처럼 낯설고 거칠게 작품을 하고싶다”고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출발은 힘겨웠다. 돌이켜보면, 치기와 용기 사이 80년대 청년이 아니었다면 창단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린 녀석들’한테 작품을 줄 작가도 없었고, 대관하기도 힘겨웠다. 신촌, 홍대 앞이나 인사동에서 극장이 아닌 카페, 야외 미술관을 빌려 유랑적, 유격적으로 공연했다.
“우리 이야기를 하자고 극단을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공동창작을 하게 됐어요. 그것이 관심받는 계기가 됐어요. 1990년 신촌에서 올린 <전쟁음?악!>을 구히서 선생님이 좋게 보시고 리뷰를 쓴 뒤, 다음날부터 5일 동안 120석 전석이 매진됐지요.”
‘작은 신화’는 창작극의 활로를 여는 ‘우리연극만들기’에 적극적이다. “창작극 지원이 없던 시절이라 젊은 작가 배출이 안 되고 신춘문예 작가도 한두 편 쓰다 사라지고. 1993년 하반기에 3000만원을 들여 창작극 발굴 시리즈 ‘우리연극만들기’로 세 작품을 올리고 나니 3000만원이 빚으로 남았어요. 우리연극만들기는 내년이면 12회를 맞게 됩니다.” 일개 극단이 20년 넘게 창작극 만들기에 집중한 것은 놀랍다.
단원들이 자체적으로 소규모 그룹으로 진행하는 창작워크숍 ‘자유무대’도 주목할 만하다. “창단 초기 정신을 후배들한테 심어주자”는 취지로 극단에서 대관료, 밥값 정도만 대주고 맡기는 실험적인 무대다. 작품이 잘 나와 정기공연으로 업그레이드된 것도 두 작품. 이를테면 ‘작은 신화’ 안에서 계속 ‘작은 신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최 대표는 하지만 30년을 이끈 진짜 힘은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공동출자·공동분배라는 재정 투명성이라고 꼽았다. “정단원들이 한달 1만원씩 회비를 내 연습실 경비를 충당하고, 제작비는 선거홍보물 발송과 지방축제 행사 뛰기 등 ‘공동알바’로 마련합니다. 대표는 저지만, 초창기부터 총회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고요. 정단원이 돌아가며 재정을 관리해 극단 살림을 낱낱이 공개합니다.”
최 대표는 “다른 선배들보다 어려서 시작했으니까, 30년을 맞아 낯설고 거친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싸지르는 것들>은 18일~11월6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 오른다. 1544-1555.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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