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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박근혜 부역자? 파시즘은 침묵과 공포를 먹고산다

등록 2016-11-07 17:33수정 2016-11-07 17:47

리뷰/ 연극 ‘안녕 히틀러’
나치 참상 그린 브레히트 원작
아들의 밀고를 두려워하는 부모
공포정치 아래 무너진 부부 신뢰
“우린 이런 통치의 부역자 아닌가”
1930년대 나치 정권 아래의 공포와 참상을 그린 연극 <안녕 히틀러>.
1930년대 나치 정권 아래의 공포와 참상을 그린 연극 <안녕 히틀러>.
정권의 교과서 개편을 비판했던 남편은 불안하다. 부부끼리 나눈 대화였지만, 누군가 엿들었을지 모른다. 신문을 보던 식탁 위로 스멀스멀 기어나온 공포는 독일 중산층 가정의 일요일 저녁을 조용하게 급습한다. 휴일임에도 히틀러 소년단(유겐트) 집회에 간 아들이 자신을 밀고하고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단원들과 함께 쳐들어올 것만 같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무것도 아닌 전화. 그렇지만 깜짝깜짝 놀란다. 히틀러 사진을 벽에 걸고, 나치 목걸이를 목에 걸며, 충성과 결백의 모양새를 내기 급급하다. 아들이 태연히 초콜릿을 물고 귀가한다. 하지만 미셸 푸코가 말한 ‘감시와 처벌’은 이미 이 가정 세 구성원을 불신과 공포로 철저히 찢어놓았다.

지난 3일 막 올린 연극 <안녕 히틀러>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을 각색했다. 원작은 독립적인 이야기 27개 장면으로 구성됐다. 아들이 밀고할까 봐 두려워하는 부모, 남편을 믿지 못하는 부인, 이웃을 ‘빨갱이’라고 밀고하고 그의 재킷을 탐내는 사람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1930년대 파시즘의 광풍이 휩쓰는 독일의 풍속화요 세밀화다. 극단 동네방네의 <안녕 히틀러>는 원작의 27장면 중 유환민 연출이 선택한 8개 장면에 새로 쓴 시작과 끝을 더해 만들었다.

무대는 단출하다. 반투명 커튼이 위에서 아래로 쳐져 있다. 제작비 때문에 비닐에다 랩을 씌운 ‘저가형 무대’다. 간유리처럼 불투명하고 안개처럼 희뿌연 커튼 뒤에서 파시즘은 시민들의 일상을 감시하고, 커튼 그 앞에서 배우는 뒷덜미가 서늘한 일상의 공포를 연기한다.

아들의 밀고를 두려워하는 부모의 얘기와 함께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배우 주혜원의 독백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다. “전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거예요. 그곳의 새해 모습은 참 아름다울 거예요.” 30대 여인은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친구들에게 다정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각별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20분 이상 이어지는 독백에서, 여인의 모호했던 상황은 안개가 걷히듯 점차 공포의 속살을 드러낸다.

“난, 당신이 비겁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요. 하지만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들이 당신을 수용소로 데려가진 않더라도 더 이상 병원에 놔두지 않을 거예요. 곧 그런 일이 닥치겠죠.”

수용소행이 임박해 망명하는 유대인 아내와 자신에게도 피해가 닥칠지 몰라 떠는 남편의 얘기는 파시즘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파시즘에 대한 공포가 서로를 어떻게 할퀴는지, 단란했던 가정을 어떻게 파탄과 파경으로 끌고 가는지 보여준다.

이렇듯 <안녕 히틀러>는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지만 히틀러가 나오지 않는다. 유 연출은 “히틀러는 배후에 은밀히 도사리고 앉아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히틀러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욕망을 섬기느라 부당한 현실에 동조하거나 침묵함으로써 비극의 시대에 휩쓸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유 연출은 가톨릭 사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파시즘은 시민의 침묵과 공포를 먹고 산다. 여기에서 ‘파시즘의 부역자’는 시민 자신일 수 있다. 지난 주말, ‘박근혜 하야’가 터져나온 ‘광장’을 지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극장’으로 갔다.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 070-8276-0917.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극단 동네방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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