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을 원작으로 한 국악극 <현의 노래>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20일까지 공연된다. 9일 오후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최종 연습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림자 서늘한 밤, 대숲이 서걱이며 일렁였다. 열두 줄 가야금이 울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칼의 세계’에서 ‘현의 울림’은 청아하되 처연했다. “사랑이 깃든 소리는 눈물 같은 사랑이라/ 아픔을 삭인 소리는 강물 같은 사랑이라~” 주제곡 ‘현의 노래’는 비감했다. 가야금 독주와 국악관현악이 소리를 주고받고, 판소리, 경서도소리, 가야금 병창이 서로 몸을 섞었다.
9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같은 이름의 김훈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국악극 <현의 노래> 연습 장면이다. 무대 한가운데엔 국악관현악단 40여명이 자리를 잡았다. 주인공이 배우가 아니라 음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대 세트는 악단 주변 공간에 넣었다.
이병훈 연출은 “국악에서 시도하지 않던 오라토리오 형식을 도입해 합창의 비중을 키워 음악적 색채를 높였다”고 음악 중심의 극을 설명했다. 캐스팅도 음악 중심이다. 우륵 역의 김형섭은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가야금 연주자다. 빼어난 창자(唱者)보다 연주자의 담담한 노래를 선택했다. 대신 가야금 병창을 하는 6명의 현녀(絃女)가 시종 노래에 힘을 싣는다. 작곡은 류형선이 맡았다.
무대 왼쪽엔 탁자 위에서 글을 쓰는 이가 보인다. 김훈 작가의 극중 대역으로 극을 이끄는 역이다. 창극에서 극 흐름을 잇는 도창(導唱)과 비슷하다. 원작의 문학적 표현을 듣는 맛이 나도록 읽어주는 낭독자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쇠락한 가야를 떠나 신라로 망명한 우륵과 진흥왕이 만나는 대목이다. 아악 선율을 따라 등장한 진흥왕은 순수비가 상징하듯 영토 확장을 이룬 ‘칼’의 상징이다. 반면 우륵은 생명과 가야금으로 상징되는 ‘현’의 상징이다. ‘칼’이 ‘현’에게 묻는다. “너의 금(琴)을 보여라. 왜 열두 줄인가?” “열두 고을의 소리입니다.” “너의 금은 나의 나라와 같구나. 너의 음악을 신라의 노래로 키워라.” “저는, 저는 그저 주인 없는 소리를 할 뿐입니다.” 우륵은 노래를 뽑는다. “주인이 없는 소리, 나의 노래 (…) 살아있는 소리, 살아있는 울림/ 무너지지 않는 소리, 살아있는 소리.”
무대 중앙 국악관현악단이 자리한 움푹 파인 곳은 암흑의 공간, 순장의 공간이다. 이 죽음의 공간을 음악을 뿜어내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비스듬하게 바닥에서 천장으로 연결한 쇠기둥은 가야의 철기 문화를 상징하고, 무대 배경 스크린은 불과 기와, 무덤 등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나타낸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대형 붉은 깃발 아래 검은 옷의 병사로 등장해 “찌챙찌챙!” 칼, 창, 도끼 싸움을 연기했다.
연극적 요소보다 음악과 문학적 표현에 치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역동적인 장면보다 아악과 판소리, 민요로 이뤄진 노래와 연주에 집중했다. 끝부분 내레이션은 극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잠든 악기 앞에서, 그 악기가 통과해온 살육과 유혈의 시대를 생각하는 일은 참담했다. 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악기가 아름답고 무기가 추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적막을 어찌 말로 옮길 수 있었겠는가. 내 글이 이루지 못한 모든 이야기는 저 잠든 악기 속에 있고, 악기는 여전히 잠들어 있다.” 10~20일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 (02)580-3080. 글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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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소설을 원작으로 한 국악극 <현의 노래>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20일까지 공연된다. 9일 오후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최종연습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