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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간 빈필 악장 퀴흘 “악장은 ‘아니요’ 말할 수 있어야”

등록 2016-11-23 18:03수정 2016-11-23 21:32

26일 서울시향 객원악장으로 연주
“카라얀 말러교향곡 연주 때 눈물
번스타인 양팔 흔들자 보면대 콰당
정명훈 장미꽃대로 유쾌한 지휘”
45년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지낸 라이너 퀴흘이 오는 26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 객원 악장으로 참여한다.
45년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지낸 라이너 퀴흘이 오는 26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 객원 악장으로 참여한다.
“악장은 지휘자에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악장이 존재감을 가진다면 단원들의 연주가 더 수월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악장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중간에 낀 샌드위치 같다. 하하하.”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의 ‘살아 있는 역사’ 라이너 퀴흘(66·바이올리니스트)은 자주 웃었다. 1971년 20살 때부터 올해 8월 은퇴할 때까지 45년 동안 빈필의 악장을 지냈으니 당연히 권위주의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안경 뒤 노신사의 눈빛은 어린이 같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빈필은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3∼4명의 악장을 중심으로 객원 지휘자들과 연주한다. 말하자면 연주자들이 주인이고, 악단 전체를 총괄하는 악장이 그 대표다.

퀴흘은 오는 26일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에 객원 악장으로 참여한다. 지난 22일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1973년부터 빈 무지크페라인 콰르텟으로도 알려진 ‘퀴흘 콰르텟’을 이끄는 한편, 1982년부터 빈 국립음대 전임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며 유럽과 일본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향이 도이체그라모폰에서 녹음한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을 들어봤다. 이번 서울시향과의 연주는 악장으로서는 한국 악단과 처음 하는 협연이다. 어떤 케미스트리(화학작용)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퀴흘이 악장으로 다시 무대에 서는 건 은퇴 뒤 석달 만에 처음이다.

45년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지낸 라이너 퀴흘.
45년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지낸 라이너 퀴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게오르그 숄티, 카를 뵘…. 퀴흘이 그동안 협연한 지휘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전설’이다. 퀴흘의 입에선 ‘전설과의 에피소드’가 술술 흘러나왔다.

“1989년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미국 카네기홀 연주 때, 사랑니 때문에 고생하는 나를 불러 걱정해줬던 기억이 난다.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선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졌다. 번스타인은 양팔을 좌우로 흔들며 지휘해, 그걸 쫓아 하던 연주자들이 보면대를 넘어뜨려 악보가 날아가기도 했다. 번스타인은 연주가 끝난 뒤 내 손을 잡고 말없이 웃었다. 하하하.”

정명훈에 대한 기억도 또렷하다. “정 지휘자가 연주 중 한 부분에서 ‘커트’(중단)를 지시했다. 내가 템포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건의하자 ‘자신의 템포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다. (오해는 풀렸다)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연주 때는 어떤 분이 정 지휘자의 보면대에 장미꽃을 올려놨다. 정 지휘자가 장미 머리 부분을 잘라내고 꽃대로 지휘를 했던 유쾌한 기억이 있다.”

퀴흘은 “예전 악장들은 지휘자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용기 내는 사람이 드물다. 악장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퀴흘은 젊은 연주자들에게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시디나 디브이디를 많이 봐서인지 흠 없이 완벽하게 연주하려는 데 얽매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도전적인 면모가 부족하다. 음악을 한다는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은 이상 엔더스 협연의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프랑크 교향곡 라단조 등이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88-121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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