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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n명의 자아, n개의 현장 ‘1인칭 촛불방송’

등록 2016-11-27 19:39수정 2016-11-28 10:59

기자가 ‘촛불집회 생중계’해보니…

멘트 더듬고 화면은 흔들리고
유저 밀집 청와대 길목선 ‘방송 불가’
닮은꼴 친구들과 경험·생각 공유
“페친 생중계로 현장 보고선
안전하다고 느껴 집회 나왔죠”

지상파 현안 외면 맞선 ‘1인 방송’서
‘지금 여기’의 생생한 모습 전하는
n명의 ‘1인칭 방송’으로 진화
보편적 현안보단 자기 시각 중시
n명의 공감 모여 ‘100만명 힘’으로
지난 19일 4차 촛불집회가 있던 날 오후 3시20분 서울 광화문 예술인 노숙텐트촌에서 페이스북 생방송으로 방혜영 연출과 김여래 배우를 인터뷰했다.
지난 19일 4차 촛불집회가 있던 날 오후 3시20분 서울 광화문 예술인 노숙텐트촌에서 페이스북 생방송으로 방혜영 연출과 김여래 배우를 인터뷰했다.
스마트폰 시대, 온갖 세상일이 손안으로 들어왔다. 반대로, 스마트폰으로 온갖 세상일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1인 방송’은 5차례 촛불집회에서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 언론 생중계가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길목 중심이었다면, ‘1인 방송’은 정부 세종로청사 뒷골목, 서울광장 주변 등 광장 이면을 현미경처럼 전달했다. 가수 이승환 등 유명인은 물론, 시민이 모두 기자요 피디였다. 생방송은 공유돼 수백, 수천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1인 방송’은 집회가 평화적이고 안전하다는 점을 ‘눈으로 보여줘’ 시민의 발길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1인’들이 가진 자신만의 다양한 시선은 ‘엔(n)개의 자아’로 ‘n개의 현장’을 중계해 공감을 얻었다. 바로 ‘1인칭 촛불방송’이다. 촛불집회 현장을 기자가 직접 생중계해봤다.

페이스북 1인 방송은 5차례 촛불집회에서 ‘집회가 안전하다’는 점을 보여줘 시민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n개의 자아’가 ‘n개의 현장’을 중계해 공감을 얻은 게 바로 ‘1인칭 촛불방송’이다.
페이스북 1인 방송은 5차례 촛불집회에서 ‘집회가 안전하다’는 점을 보여줘 시민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n개의 자아’가 ‘n개의 현장’을 중계해 공감을 얻은 게 바로 ‘1인칭 촛불방송’이다.

#1. 19일 오후 3시20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오른쪽 뒤통수 쪽 30번과 31번 텐트#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 휴대폰 페이스북에서 카메라 모양 아이콘으로 된 ‘라이브방송’을 눌렀다. 그 다음 ‘광화문 예술인 노숙텐트촌 인터뷰’라는 방송 제목을 입력하고 다시 방송하기를 눌렀다.

“저는 지금 뭐지…. 에~ 광화문 예술인 노숙텐트촌에 나와 있습니다. 방혜영 연출, 김여래 배우 등 3명이 텐트를 지키고 있습니다. 연극인들은 극장에 있어야 하는데 연극인들이 왜 광장에서 농성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차은택씨같이 문화사업을 해먹은 경우도 있고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탄압도 너무 많았는데, 이런 게 검열과 블랙리스트에서 발생했어요. 연극의 기본은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표현자유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김여래) “연극인 텐트촌의 지킴이 방혜영 연출께서 이곳 현황을 좀 말씀해주시죠.” “연극인 말고도 어린이문학, 미술, 시 쓰시는 분들 등 모두 40개에서 50개 정도인 것 같아요. 시민 개인이 텐트도 있어 더 늘기도 합니다. 저는 작·연출을 하는데요 ‘이렇게 쓰면 지원금을 못 받겠지’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풍토가 너무 비민주적이라고 봐요.”(방혜영)

‘1인 방송’은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방송 중 서정식 배우가 댓글을 달았다. 댓글을 보여주자 김여래 배우는 “빨리 와요, 정식이 형”이라고 반겼다. 방송 다시보기를 눌렀다. ‘엄지 척’ 아이콘과 ‘하트’ 아이콘이 화면을 떠다니다 톡! 톡! 터졌다. 좋아요 51명, 댓글 8개, 공유 5회, 조회 1198회. 근데, 벌써 수전증인가? 화면은 심하게 요동쳤고 김 배우는 얼굴 일부만 잡혔다. 에고, 말을 하며 찍는 건 정말 힘들구나!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예술인 노숙텐트촌에서 페이스북 생방송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여래 배우.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예술인 노숙텐트촌에서 페이스북 생방송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여래 배우.
#2. 같은 시각 서울역 앞 박사모 집회#

1인 미디어의 선두주자 미디어몽구(김정환)는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집회를 생중계했다. 그는 ‘1인 미디어계의 제이티비시(JTBC)’로 통한다. 화면 위로 펑펑 터지는 이모티콘은 ‘화나요’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빨간 모자 군복도 보인다. 좋아요 7200명, 댓글 7170개, 공유 460회, 조회 26만회. 미디어몽구는 오후 1시께 서울역 옛 역사 앞에서 노인에게 돈을 나눠주는 장면을 포착해 언론에 제보했다. 실핏줄같이 촘촘한 1인 미디어의 위력이다.

#3. 19일 저녁 7시40분 경복궁역 앞 네거리#

시위 행렬을 따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 세종로청사 뒷길을 따라 경복궁역 네거리까지 800m를 이동하며 중계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함성이 점점 커졌다. 청와대 쪽으로 군중들이 몰려갔다. 버스 위에선 경찰들이 사진 채증을 했다. 남편과 열살, 열두살 아들의 손을 잡고 온 40대 문아무개씨는 “페북을 보고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왔다.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낮에 김 배우가 서 배우를 부른 것처럼 생중계는 ‘참여 독려’ 기능이 크다. 집회가 안전하다는 점을 보여줘, 유아를 동반한 가족, 연인, 동창회 단위 참가를 늘렸다.

19일 저녁 7시40분 경복궁역 앞 네거리에서 촛불집회 행렬이 청와대 쪽을 향하고 있다.
19일 저녁 7시40분 경복궁역 앞 네거리에서 촛불집회 행렬이 청와대 쪽을 향하고 있다.
#4. 12일 경복궁역 세종문화회관 방면 뒷골목#

솜털 보송한 중고생들의 모임이 한창이다. 5일 집회 때 봤던 남학생이 이날도 마이크를 잡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들어갈까 말까 하는 대학을 특혜로 들어가는 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 다시보기를 눌렀더니, 아뿔싸, 음향이 안 나온다. 방송 사고다. 조금 전 경복궁역에선 많은 인원이 밀집하다 보니 통신장애로 방송하기 연결에 실패했다. 끙, 방송 사고의 연속이다.

#5. 21일 밤 서계동 국립극단 인근 주점#

국립극단 연극 <타조소년들>을 본 뒤, ‘1인 방송’을 한 다른 기자와 극단 관계자를 만났다. 그 기자는 “1인 방송이 기존 방송처럼 전체 이슈를 보여준다면, 내가 한 방송은 ‘1인칭 방송’이다. 1인 방송이 미디어몽구처럼 기존 매체가 가지 않는 곳을 간다면, 1인칭 방송은 지금 여기 내 위치에서 내 시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극단 관계자는 “언론을 신뢰해 그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이 괜찮다니까 그 공연을 본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까 촛불집회에 나간다. 그 사람의 글, 말, 주제에 관심을 가지면 그 사람의 1인 방송에도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6. 24~25일 페이스북 관계자, 뉴미디어 전문가와 통화#

24일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라이브방송이 (집회 기간에) 얼마나 늘었는지 따로 집계는 없지만, 집회든 개인적인 경험이든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전달하는 통로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25일 뉴미디어 전문가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1인 미디어의 특징으로 ‘즉각적 이슈 생산’과 ‘정서적 지지’를 꼽았다.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등 개인형 방송은 소셜 미디어요 자아중심적 미디어로, 개인의 관심을 즉각 이슈로 만들 수 있다. 거기에 다양한 사회적 참여행동에 대한 지지나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공유되면서, 자신과 가까운 네트워크 기반의 정치참여 유대성과 정서적 지지가 강하게 확산된다.” 황 교수는 이어 ‘동원기능’(mobilization)도 또 다른 특징으로 들었다. “개인이 가진 관점의 다양성과 동일 공간의 이벤트라도 입체적 콘텐츠 경쟁이 일어나는 특성 때문에 주변의 참여를 유도하는 동원기능이 강하다.”

월인천강(月印千江). 달은 하나지만 천개의 강에 자신의 흔적을 찍는다. 기존 언론이 하나의 모습으로 달을 가리킨다면, 1인 방송은 1000개, 100만개의 모습으로 민주주의라는 달을 가리킨다.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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