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소년교도소 수형자들이 출연한 뮤지컬 <소년표류기>.
지난 28일 김천소년교도소 뮤지컬 연습실, ‘배우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탁호영(44) 연출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너무 밉다. 니들처럼 순한 애들과 내가 왜 여기서 만나야 했나. 몽둥이가 있으면 때려주고 싶다”며 울먹였다. 순간 아이들 울음보도 터졌다. 소년들은 울었지만,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앞서 22일 19명의 수형자 아이들은 교도소 대강당에서 부모 등 260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뮤지컬 <소년표류기>를 올렸다. 2013년 시작한 소년 수형자 교육교화를 위한 ‘제로캠프 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된 공연이다. 지난 4월부터 7개월 동안 땀 흘린 결과는 ‘아이들도 만족하는 공연’으로 끝났다. 29일 박영희(41) 예술감독에게 제작 뒷얘기와 수형자 예술교육에 대해 들었다.
“200명 정도 수형자 아이들 중에서 주먹으로 1, 2, 3등 하는 애들이 다 들어왔어요. 첫 리딩을 할 때 ‘암담하구나,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어책처럼 읽는데다, 회사원 역할, 용광로 노동자 역할을 전혀 이해를 못했어요. 15살 때부터 교도소를 들락날락한데다, 조직폭력이나 성매매 알선 같은 일을 했으니까 그런 거죠.”
<소년표류기>의 제작을 총괄한 박영희 예술감독.
대본은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인 송경화 작가가 쓰고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해 공연대본으로 점차 발전시켰다. 작품은 출근길 버스에서 시작한다. 철없는 청소년 4명은 버스 사고와 맞닥뜨려, 영문도 모른 채 망망대해 한가운데 떨어진다. 그리고 사고 직전 구하려 했던 갓난아기를 떠올리고, 어디선가 표류하고 있을 아기를 찾으려 고군분투한다.
“‘굿모닝 버스’라는 노래를 보여줬더니, 아이들이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하는 거예요. 자신감이 없어, 화장실 갈 때도 주먹짱 정○○(20)이 신호를 줘야 가는 애들이었어요. ‘노래는 좋지만, 할 수 없다’며 한달 내내 저항하길래 전 ‘죽었다 깨나도 안 된다’고 딱 잘랐어요. ‘매일 1㎝씩만 가자, 느릿느릿 가면 석달 안에 노래가 되지 않겠니’라고. 그리고 애들 말을 귀 기울여 들었어요. 그제야 애들이 마음을 열더라고요.”
연습 막바지 10월 중순엔 한달치 연습계획을 1시간 단위로 촘촘히 정리해 애들한테 보여줬다. “선생님 너무 힘드시겠어요”라며 애들이 따랐다. 이제까지 주먹짱 정○○이 주도해 연습을 따라왔다면, 이제 중간급, 막내급까지 공감했다. 주먹 4위 조○○(19)는 탁 연출한테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와 동갑인데, 애들이 연출님 말을 안 들으면 속상합니다”라고 했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다가 그날 처음으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
뮤지컬의 앞과 뒤엔 임○○(19)이 출연하는 소년수 장면이 있다. 아이들이 ‘우리 얘기’를 넣어달라고 부탁한 대목이다. 처음 장면은 출소를 앞두고 두 통의 편지를 받는데 하나는 조직 형님으로부터, 또 하나는 바리스타 로스팅 마스터로부터다. 교도관이 어디로 갈 건지 묻는다. 마지막 장면에선 바리스타를 꿈꾸며 로스팅 마스터를 찾아 원주로 떠난다. 뮤지컬을 통해 출소 이후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박 감독은 “수형자에게 문화예술교육이 도움이 된다는 건 모두 다 느껴요. 아이들 간 폭력·절도 같은 사고가 줄고 재범률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소년원이나 학교밖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까지 확대됐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올해 3월 영국 <비비시>(BBC)는 지난해 12월 연구 결과를 인용해 “팀 로빈스의 (미국 캘리포니아 교도소) 연기 수업에 참여한 수감자들의 교도소 내 규칙 위반율, 교도소 내 싸움이 89%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문화예술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다.
22일 공연이 끝난 뒤, 정○○은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분”이라고 했고, 최○○(20)은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빠의 아들이고 싶어요”라고 했다. 한상호 소장은 “그동안 교정행정을 하면서 오늘처럼 감사 인사를 많이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박 감독은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어른으로 살겠다. 너희들이 나오면 내가 치맥 사줄게.”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박영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