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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인생 1악장은 시향 악장, 2악장은 교향악 교수”

등록 2016-12-18 19:27수정 2016-12-18 21:47

[짬] 수원시향서 악장 정년퇴임한 김동현 한예종 객원교수
수원시향 악장에서 정년퇴임하는 김동현 한예종 객원교수. 그는 오케스트라 악장 경험을 살려, 교향곡과 협주곡을 파트별로 훈련시키고 합주하는 교육을 담당한다.
수원시향 악장에서 정년퇴임하는 김동현 한예종 객원교수. 그는 오케스트라 악장 경험을 살려, 교향곡과 협주곡을 파트별로 훈련시키고 합주하는 교육을 담당한다.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들어가 24년간 활동하다 악장으로 정년퇴직한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제가 처음입니다. 당시 B급이던 악단을 A급으로 성장시킨 게 큰 보람입니다.”

지난 14일 수원 에스케이(SK)아트리움 소공연장, 백발이 성성한 김동현(57) 수원시립교향악단 악장의 정년퇴임 기념공연이 있었다. 스승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존대하는 아우’ 김대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와 협연하고 한경진 후임 악장 등 13명의 제자도 동참한 헌정공연이었다. 1992년 수원시향에 악장으로 입단해 금난새(1992~99), 박은성(2001~08), 김대진(2008~) 상임지휘자와 함께했다. 그의 재임 기간 수원시향은 한국에서 손꼽는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제자 권혁주의 죽음도 있었다. 그는 악장이라는 ‘인생 1악장’을 마치고 인생 2, 3악장을 앞뒀다. 17일 서울 서초동 한예종에서 김 악장을 만났다.

24년간 한 악단 악장 일한 첫사례
“베토벤·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앨범 내며 악단 성장”

스승 김남윤, 퇴임공연 와 눈물
먼저 간 제자 권혁주엔 안타까움
“학생 지도, 프리랜서 악장 계속”

“정년퇴임 기념공연이 있던 날, 김남윤 선생께서 제가 어릴 때 연습 빼먹으면 잡으러 다녔던 얘기, 제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걸 반대했던 이유를 얘기하셨어요. 솔리스트로 좀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랐고, 당시 수원시향이 서울시향이나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보다 급이 떨어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오케스트라가 연주자들에게 좋은 직장이 된 걸 보고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인정을 해주신 거죠.”

이날 김남윤 교수도 ‘백발 제자의 정년퇴임’ 때문인지 울었고, 현악부문 단원들도 울었다. 원래 눈물이 없는 김 악장도 눈시울을 적셨다. 여섯살 고사리손에 바이올린을 쥔 이래 수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양해엽·김남윤 등 선생님들, 초등생 때 부산시향 협연과 중학생 때 서울시향 협연, 미국 맨해튼 음대 유학, 수원시향 악장 24년, 권혁주·박지윤·이유라·김혜진 등 제자들….

악장은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자리다. 현악기군뿐 아니라 관악·타악 등 오케스트라 전체를 총괄한다. 지휘자와 단원을 잇는 ‘다리’이지만 자칫하면 둘 사이에서 샌드위치 꼴이 되기 십상이다.

“단원들은 지휘자한테 할 말을 악장한테 합니다. 그대로 전하면 싸움 되기 쉬우니까 완곡하면서도 본뜻을 정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단원한테 직접 얘기하는 지휘자는 편하지요. 가끔 제 본의가 뻥 튀겨 전달되기도 해요. 관악 수석 단원이 저를 ‘관악적 성향을 지닌 악장’이라고 불렀어요. 이런 성격 때문에 장수했던 것 같아요.”

24년간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뭘까? “단원들의 실력이 훌쩍 성장한 것은 물론이고 해외 유명 레이블에서 다수의 앨범을 냈다는 점입니다. 앨범을 한 장 내려면 엄청난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러고 나면 기량도 일취월장하기 마련이지요.”

2008년 김대진 상임지휘자 취임 뒤, 김 악장은 베토벤·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곡 연주를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을 통해 세 장의 앨범으로 내놓았다. 2009년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빈·린츠,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 프라하, 독일 뮌헨, 이탈리아 메라노로 이어지는 해외 순회공연도 이끌었다.

수원시향은 서울시향과 함께 유명 레이블 앨범을 가장 많이 낸 국내 오케스트라로 손꼽힌다. 국내 오케스트라의 위상도 많이 높아져 이제 연주자들이 입단하려면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요즘 오케스트라 입단 경쟁률이 100 대 1 정도입니다. 그래서 ‘악단고시’라고 부릅니다. 하하.”

수많은 제자 중에도 먼저 세상을 뜬 권혁주가 유독 눈에 밟힌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촉망받던 그는 지난 10월 부산에서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순댓국을 사 먹이고 음악회도 데려가고 가깝게 지냈는데…. 환경이 그리 넉넉지 않아서 잘 웃지도 않았지만, 정말 재주가 많은 아이였어요. 한번은 페이스북에 바흐 음악을 아랍음악처럼 만들어 ‘압둘라’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았더라고요. 제가 악장을 맡은 ‘코리안 솔로이스츠’ 공연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꼭 나흘 전에 세상을 떴어요.”

수원시향에서 24년간 쌓은 노하우는 후학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김 악장은 올해부터 한예종 음악원 전문사(대학원) 과정에서 오케스트라 분야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교향곡과 협주곡 분야를 훈련하고, 합주로 다지는 수업이다.

수원시향 악장은 퇴임했지만 ‘프리랜서 악장’은 계속할 생각이다. “내년 상반기 부산시향 객원 악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회전근계 파열’ 때문에 당분간 솔리스트 계획은 없어요. 김남윤 선생이 만든 ‘코리안 솔로이스츠’ 악장을 하면서, 그 단체를 자연스럽게 후배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김 악장의 ‘인생 2악장’은 다시 교수와 악장으로 이어진다.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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