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토우라에서 출토된 관 덮개 윗부분. 기원전 7~4세기 신분이 낮은 서민의 무덤에 썼던 것으로 덮개 위쪽에 망자의 얼굴 부조상을 빚어놓았다. 비탄과 회한에 젖은 망자의 표정이 세월을 넘어선 감동을 자아낸다. 흙을 빚어 구은 테라코타에 채색한 것이다.
4세기 로마시대의 이집트 서민들이 만든 미라 덮개. 흙으로 빚은 덮개판 위에 서투른 필치로 망자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이 투박한 얼굴상은 비탄으로 뒤덮여 있다. 이승과 작별하는 안타까움, 슬픔이 한 덩어리 부조로 응결되었다. 3500년 전 유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살아 있는 감정이 느껴져온다. 두툼하게 돋은 눈망울과 육중한 콧대가 텁텁한 질감과 맞물려 강렬한 표정을 만들었다.
이집트 토우라에서 출토된 기원전 7~4세기께 서민 무덤의 관 덮개는 윗부분 망자상의 표정에 비친 심오한 감정이 피에타상처럼 가슴을 울린다. 수천년 세월을 넘어 교감되는 표정의 감정이 감동으로 바뀌어 다가오는 경험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차린 ‘이집트보물전’은 고대 이집트 사람의 삶 자체를 질박하게 드러내는 유물들이 즐비하다. 미라와 피라미드 이면에 깃든 이집트인들의 숨결과 삶, 죽음에 대한 뭉클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이 특별전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의 최근 컬렉션 전시 2개를 합쳐 만들어졌다. 내세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례 유물들로 생활상을 조명한 ‘영원한 삶을 위하여’전이 전반·중반부에, 이집트 특유의 동물숭배 관습을 부각한 작은 전시 ‘영혼이 담긴 창조물들’이 후반부에 들어간 얼개다.
출품된 유물들은 사람·동물 미라들과 관장식, 장신구 등으로 구성된 껴묻거리(부장품) 등 229건으로, 구성이 신선하다. 귀족 상류층과 서민, 빈민층의 장례 관련 유물들을 대비시키고 기원전 1000년 이전의 이집트 고왕조 시대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간 기원전 1세기 이후 유물들도 함께 진열해 이집트 문명의 역사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개되어왔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흔히 고대 이집트 문명의 대명사로 미라와 정형화한 신과 인물의 부조, 상형문자를 꼽는다. 미술사에서는 이른바 ‘정면성의 원리’라고 하여 사물과 인체의 상체가 정면을 향하게 묘사되는 권위적 양식의 미술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제국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통찰했듯 신화라는 공통된 상상력을 토대로 사람들이 처음 집단적 문명을 이루며 살아갔던 터전이다. 브루클린 뮤지엄 큐레이터들은 그들의 삶과 죽음에 깃든 사람의 온기를 찾는 데 주력했고, 이집트 유물들의 정형화된 시각 양식과는 다른 내면의식과 계층적으로 다른 생활 감정들을 끄집어냈다.
1세기 로마시대 이집트 상류층 사람들의 사치품이었던 발덮개. 밑바닥에 짓밟을 적들의 모습을 그리스풍으로 그려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물론 전시장엔 오시리스, 아누비스 등 내세의 신들이 그려진 여러 미라와 관들이 숱하게 대표유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더욱 눈길에 와닿는 건 하층민들이 대충 모양새만 맞춰 만든 장례용품들이다. 서민층의 미라 덮개, 관덮개들은 흙 테라코타로 만든 뒤 금박을 입히거나 표면에 서투른 필치로 상류층의 미라 얼굴 모양을 그려넣은 것들인데, 엉성한 그림과 모양새가 인간적 교감을 일으킨다. 부장품으로 들어간 인물 조각상은 값비싼 규암인데, 앉힐 봉헌탁자는 값싼 석회석으로 때운 기원전 20~18세기 이페피 조각상, 화강암 무늬를 칠해 비싼 돌그릇인 양 치장한 토기 항아리 등에서 당시 흙수저들의 속내를 읽게 된다. 기원전 6세기 만들어진 상류층 인사 토티르데스의 미라 목관은 망자가 심장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 매는 저승의 심판을 받는 장면 등이 다채롭게 수놓여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전시 후반부는 동물들 천국이다. 신의 형상과 힘을 상징한다며 따오기, 쇠똥구리, 고양이, 뱀, 매 등을 미라로 만들어 신처럼 모셨던 이집트인들의 독특한 관념을 여러 동물 미라들과 매우 사실적인 금속, 테라코타 동물상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람과 동물이 융합된 복합신인 세라피스 신상도 볼거리다. 성인 1만3000원, 초등학생 8000원. 4월9일까지.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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