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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너무 일찍 봐 버렸다, ‘올해의 공연’

등록 2017-01-12 14:17수정 2017-01-12 21:49

김학선 음악평론가가 본 메탈리카 내한무대
서울 구로구 고척돔에 첫 헤비메탈이 울려퍼졌다.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의 훌륭한 사운드였다. 에이아이엠 제공
서울 구로구 고척돔에 첫 헤비메탈이 울려퍼졌다.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의 훌륭한 사운드였다. 에이아이엠 제공

11일 저녁 8시 서울 구로구 고척돔에서 메탈리카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한국에서 누적 관객 10만명을 동원한 메탈리카가 2017년 월드 투어의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김학선 음악평론가에게 공연 리뷰를 부탁했다.

어쩌면 베이비메탈을 처음 접한 이들에겐 낯설고 놀라운 무대였을지 모른다. 강렬한 헤비메탈 반주에 맞춰 아이돌 그룹 멤버 같은 세 명의 여성 보컬이 율동과 함께 노래를 한다. 이 특이한 형태의 일본 그룹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 헤비메탈 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메탈리카의 오프닝 무대로 베이비메탈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베이비메탈 보러 고척에 갑니다”나 “베이비메탈이 메인 공연이고 메탈리카가 엔딩 게스트 아닌가요?” 같은 우스갯소리가 나온 건 그런 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이비메탈의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꽤 오랜 기다림 끝에 메탈리카가 등장했을 때 위의 우스갯소리는 그저 농담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베이비메탈에겐 오프닝 밴드의 비애라 할 수 있는 사운드와 조명의 제약이 있었고, 메탈리카에겐 수없이 많은 무대에서 쌓아올린 경험과 여유가 있었다. 메탈리카는 열 번째 정규 앨범이자 새 앨범인 <하드와이어드… 투 셀프-디스트럭트>(Hardwired... To Self-Destruct)의 세계 투어 첫 공연 장소로 서울을 택했다. 긴 여정의 시작인만큼 멤버들의 움직임은 활기찼고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관건은 ‘사운드’였다. 고척 돔에서 처음으로 갖는 강성의 록·메탈 공연이었다. 지붕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서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어떻게 퍼져나갈지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궁금해했다. 베이비메탈이 들려준 아쉬운 소리에 우려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메탈리카의 등장과 함께 모든 우려와 걱정은 날아가 버렸다. 네 명의 멤버가 만들어낸 차진 사운드는 ‘헤비메탈’ 그 자체였다. 새 앨범의 머릿곡인 ‘하드와이어드’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각종 소셜 네트워크에는 “사운드 죽인다”는 평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모두의 걱정이고 모두의 궁금증이었던 셈이다. 이날의 사운드는 앞으로 고척 돔에서 열릴 수많은 공연의 기준점이 될 만했다.

강렬한 사운드에 실려 나오는 히트곡 퍼레이드는 당연히 벅찼고 당연히 훌륭했다. 보컬 제임스 해트필드의 목소리는 안정적이었고, 연주에서 자잘한 실수들이 있었지만 전체 공연에 큰 흠이 되진 않았다. ‘포 호스맨’(Four Horseman)으로 시작해 ‘원’(One), ‘매스터 오브 퍼핏츠’(Master Of Puppets), ‘포 훔 더 벨 톨즈’(For Whom The Bell Tolls)로 이어지는 중후반부는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원’에서 보여준, 돔 공연장의 특성을 잘 활용한 조명 쇼는 오래도록 얘기될 만한 멋진 장면이었다.

헤비메탈의 전성기는 갔지만 2만 명의 관객이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에이아이엠 제공
헤비메탈의 전성기는 갔지만 2만 명의 관객이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에이아이엠 제공
하지만 새 앨범의 노래들을 연주할 때 분위기가 다소 처지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정점을 찍고 완만하게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음악가들에겐 메탈리카의 노래 제목처럼 ‘슬프지만 사실’(Sad But True)인 일이다. 당장 어제의 셋리스트만 봐도 새 앨범의 곡들을 빼고는 5집 이후의 앨범에선 단 한 곡도 선곡되지 않았다. 새로운 음악에 집중하기보단 과거의 추억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헤비메탈’을 내세워 2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건 메탈리카만이 유일하다. 아이언 메이든과 주다스 프리스트는 이미 민망할 정도의 관객 수를 기록했고, 왕년의 헤비메탈 밴드들이 모을 수 있는 최대 숫자는 대개 천 단위에 머문다. 흔하게 쓰이는 ‘헤비메탈의 제왕’이란 수식어가 괜한 것이 아니다. 메탈리카는 제왕의 품격에 어울리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공연의 흐름과 연출 모두 짜임새가 있었다. 태극기와 메탈리카 로고가 그려져 있는 기타 피크를 보여준 뒤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의 리프를 연주하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이제 겨우 새해의 열흘 정도가 지났지만 벌써 올해의 공연을 본 듯하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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