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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무당이 무당 얘길 쓰고 연출한 연극은 처음이다

등록 2017-02-02 14:04수정 2017-02-02 21:15

임덕영, 9~28일 ‘동이’ 올려
7살에 신굿, 20대 무당의 길
신내림·무속인 삶 알리고파

“일반인도 무속 기본 이해한다면
사이비가 사람 잡는 일 사라질 것
국정농단 최순실 보면서 분통터져”
무당이 쓰고 연출한 최초의 연극 <동이>를 올리는 무당 임덕영. 극단 영감 제공
무당이 쓰고 연출한 최초의 연극 <동이>를 올리는 무당 임덕영. 극단 영감 제공
“아가, 두려워할 것 없다. 무당은 신이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화해시키는 영매자다.” 박 선생이 발을 닦아주자, 동이가 격렬하게 뛴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로 뛰어오른다. 작두날에 한 발을 올린다. 내처 두려워하며, 끝내 거부하고 싶지만, 결국 신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당의 운명. 연극 <동이>의 마지막 장면이다.

다시 되돌아가, 연극의 첫 장면. 박사고깔을 쓴 동이에게 신이 내린다. 불이 꺼졌다 켜지자, 동이의 엄마가 동이를 낳는다. 신내림이라는 무당의 탄생이 인간의 육체적 탄생과 다르지 않다는 것. 작품의 얼개는 동이라는 청년이 영적인 존재에 시달리다, 집안 불화와 아버지·연인의 죽음을 겪으며 신내림을 받는 과정이다.

무당 임덕영이 굿을 하는 모습. 극단 영감 제공
무당 임덕영이 굿을 하는 모습. 극단 영감 제공
작두는 무당이 굿할 때 서슬 퍼런 날 위에 맨발로 올라섬으로써 신령의 영험력을 발휘하는 도구다. 극단 영감 제공
작두는 무당이 굿할 때 서슬 퍼런 날 위에 맨발로 올라섬으로써 신령의 영험력을 발휘하는 도구다. 극단 영감 제공
<동이>는 무당 임덕영이 쓰고 연출했다. 무당이 직접 작·연출한 연극은 지금까지 없었다. 무당이 섬기는 신을 몸주(身主)라 부르는데, 임덕영은 ‘작두여장군’을 모신다. 설을 앞둔 지난달 25일 서울 지하철 한성대역 부근 지하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임덕영은 “무당은 설움 끝에 핀 꽃,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라고 했다. “강부자가 출연한 이윤택의 연극 <오구: 죽음의 형식>은 있었지만 직접 무당이 신내림과 일생을 풍자와 해학까지 더해 담은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어요.”

전문가의 도움도 있었지만 원작·각색·연출을 거의 혼자 해냈다. “대학 다닐 때 동아리 수준으로 배우를 해봤고 글 쓰는 걸 좋아해 시나리오를 서너 편 써봤습니다.” 걸걸한 목소리에 ‘풍족한 체격’까지 더해 기가 ‘쎄’ 보였다. “자, 자, 그 장면 다시 해봅시다!” 카리스마가 연출자 덕목 중의 하나라면 제대로 갖췄다. 귀신을 쫓는 구마 의식을 통해 기싸움에 단련된 그다.

그가 연극 할 생각을 한 까닭은 “무당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토속신앙인 무속이 음지에 있다 보니 병폐가 생겼어요. 일반인도 무속에 대한 기본 이해를 한다면 사이비도 없어질 거고, 원력(무당의 신적인 능력)도 없으면서 엉뚱한 사람 잡는 일도 사라집니다.”

<동이>의 주인공은 남자지만, 연극의 내용은 임덕영 자신이 겪은 얘기다. “어릴 때부터 자다가 숨이 넘어가는,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겼어요. 무병을 앓았지만 신내림을 거부했던 어머니는 제가 일곱살 때 신굿을 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집에 신당을 모셔놓았지만 점을 치는 ‘점사’는 하지 않았어요. 20대 때 다시 고비가 와 운명적으로 무당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임덕영은 5년 전부터 틈틈이 대본을 썼다. 극중 캐릭터들은 모두 실제 인물에서 따왔다. 동이는 제자 중 하나이고, 박 선생도 주변에서 만난 이다. “굿판 제자들의 다양한 삶과 희로애락을 대중가요와 섹시 댄스 등을 통해 재미나게 풀었습니다.” 연습 장면에서도 웃음 코드가 곳곳에 촘촘하다.

무당의 눈에는 ‘무당 논란’ 최순실이 어찌 보일까? “최순실을 보면 분통 터져요. 손님이 굿을 했다고 그 사람이 무당은 아니잖아요. 최태민도 불교나 기독교적인 명칭은 있었지만 무당적인 것은 없었는데,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니 무속 쪽에 덮어씌웁니다. 거기에 대응할 무속인 집단이 없는 현실도 안타깝고.”

연극 <동이>에서 주인공 동이가 신내림을 받는 연습 장면. 극단 영감 제공
연극 <동이>에서 주인공 동이가 신내림을 받는 연습 장면. 극단 영감 제공
연극 <동이>에는 그가 만든 ‘극단 영감’ 배우들이 출연한다. 배우 15명에 스태프가 8명이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연극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전문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토속신앙적인 소재가 완성되면 1년에 2~3차례 작품을 올릴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빙의 소재나 영화 <검은 사제들>처럼 퇴마 소재를 다루고 싶어요.” 출연 황원규, 오민휘, 성낙경, 김자미, 김윤미, 권준영, 매화, 김태현, 김지현. 오는 9~28일 서울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 (02)3676-367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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