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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카타리나는 왜 ‘창녀·빨갱이’가 됐나

등록 2017-02-07 17:28수정 2017-02-07 18:00

연극무대 오르는 ‘카타리나 블룸…’
황색신문의 마녀사냥 집중탐구
연출 “비판적이면 좌파 몰아
독일 얘기인데 한국과 닮은꼴”
변민지 ‘무표정한 분노’ 연기
연극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카타리나 역의 변민지가 연습하는 모습.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제공
연극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카타리나 역의 변민지가 연습하는 모습.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제공
“카타리나 블룸은 은행강도의 정부이자 공산주의 추종자로 알려졌다.” 일간지 <차이퉁>의 보도로 성실한 27살 가정부의 삶은 한순간에 송두리째 무너진다. 어떻게 이런 보도가 나온 것일까?

막이 오르면, 붉은 슬립 차림의 카타리나(변민지)가 느닷없이 체포된다. 우연히 댄스파티에서 만나 밤을 함께 보낸 남자가 은행강도였던 것이다. 검찰 조사에서 무죄를 증명하려 애쓰지만, 카타리나를 찾아오던 신원불명 남자의 존재가 드러난다. 검찰은 그 남자가 은행강도와 동일 인물임을 자백하라고 겁박한다.

검찰의 짜맞추기 강압수사가 ‘1’이라면 황색언론의 보도는 ‘2’와 ‘3’으로 부풀려진다. “알려졌다”라는 무책임한 문체로 피의사실은 공표되고, 카타리나는 ‘강도의 정부이자 빨갱이’로 날조된다. 언론의 마녀사냥이다. 이때 기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서늘한 공포. 왜곡보도는 힘이 세다. 지인들조차 점차 그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다.

하인리히 뵐 원작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 탄생 100년을 맞은 뵐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신동일(37) 연출은 제26회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카프카의 변신>으로 작품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변신’에 이어 ‘명작소설 프로젝트’ 두번째 공연이다.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연습실에서 1시간40분 전막 연습을 지켜봤다.

연극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카타리나가 검찰 조사를 받는 연습 장면.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제공
연극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카타리나가 검찰 조사를 받는 연습 장면.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제공
“탕, 탕, 탕, 탕!”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연극의 마지막, 카타리나는 집을 찾아온 기자를 쏜다. 변민지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분노를 내장한 눈은 붉게 충혈됐지만, 무표정한 얼굴은 분노를 넘어 허탈하게 허공을 응시한다. “초인종이 울렸어요. 그 기자였어요. 허락도 받지 않고 그는 성큼성큼 들어왔어요. ‘카타리나, 소문대로 아주 예쁘네.’ 목소리가 너무 역겨웠어요. ‘뭘 그리 보는 거야, 우리 일단 섹스나 한판 하고 시작할까?’ 능글맞은 얼굴이 옷깃이 닿았어요. 14살 때부터 가정부로 일한 여자에게 남자가 옷에 손을 댄다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섹스나 한판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쐈어요.”

연극에서 주목할 대목은 두 곳. 먼저 카타리나의 검찰 진술 내용과 보도의 차이. 얼굴 없는 기자가 내레이션을 할 때 진술은 어떻게 왜곡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하나. 힘이 돼야 할 주변 사람들도 왜곡보도가 계속되자 카타리나를 의심한다는 점. 언론의 세뇌효과로 인물의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중요 관전 포인트다.

“박근혜 대통령 문제가 요즘 낱낱이 드러나니까, 국민이 멘붕에 빠졌다. 국민의 관심이 적었던 탓도 있지만 왜곡된 언론이 그런 상황을 불렀다. 1970년대 독일 얘기인데 묘하게 지금 한국과 무척 닮았다.” 신 연출의 설명이다. “그때 독일에서 비판적인 인물을 공산주의 추종자로 몰았는데, 요즘 한국에선 세월호 얘기 하면 종북이나 빨갱이로 몬다. (블랙리스트에서 보듯) 연극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데 모두 빨갱이로 치부하는 것도 비슷하다.”

공연연구소 탐구생활이 주최하고 극단 창세가 제작했다. 출연 변민지, 한정현, 서병철, 정재은, 정해연, 황위재, 이진한, 홍유진, 유재훈, 이채영. 이달 10~26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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