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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차이코프스키, 안무에 맞춰 음악 만들다

등록 2005-11-09 16:56수정 2005-11-10 15:17

노승림의무대X파일 - 고전 발레 안무가 프티파
발레는 분명 프랑스에서 기원했다. 그러나 오늘날 ‘고전 발레’의 종주국은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다. 그 이유는 뭘까?

해답은 간단하다. ‘발레’의 기원은 프랑스였지만 ‘고전 발레’는 러시아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발레 이전 프랑스에서 유행한 발레는 흔히 ‘낭만 발레’로 불린다. 고전에서 낭만으로 넘어가는 클래식 음악의 순서와는 정반대로 발레는 낭만 발레에서 고전 발레로 발전했다.

그 모든 역사는 1890년대 파리출신의 유망한 젊은 무용수 한 명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며 비롯되었다. 서유럽에 비해 러시아는 문화적 후진국이었다. 이를 개탄한 러시아 황실은 정책적으로 발레를 육성하기로 하고 19세기 최고의 무용수 세 명을 스카웃했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초빙한 인물이 바로 오늘날 클래식 발레의 대명사가 된 마리우스 프티파다.

1847년 스물 아홉 살의 나이에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가 된 프티파는 그로부터 25년 뒤 예술감독이 됐다. 러시아로의 망명은 프티파로서도 좋은 기회였으니,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두 명의 조력자, 차이코프스키와 레프 이바노프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를 만나기 전 프티파는 신통치 않은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갈등과 좌절을 계속했다. 차르의 절대적인 신임을 배경으로 한 프티파의 성격은 독선적이고 나르시즘이 대단히 강했으며 웬만한 작곡가들은 그런 안무가를 버텨내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섬세하고 여리기로 소문난 차이코프스키가 이런 프티파의 성격을 견디어 낸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성실하지만 소심했던 차이코프스키는 서른 살 연상의 안무가가 시시때때로 거는 사사로운 트집과 모욕을 감수하며 그가 요구하는 대로 작곡을 해주었다.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대다수의 음악들은 프티파가 이미 구상해 둔 안무에 근거해 작곡한 것이다. 음악이 아닌 동작이 먼저 구상된 셈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프티파와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모든 작품은 ‘고전’이 됐으며, 발레 애호가들은 이들의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고자 ‘고전 발레’라 칭하기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보다도 더욱 원통하게 시달린 사람이 있으니 조수로 활동한 안무가 레프 이바노프이다. 프티파와 달리 순수 러시아 출신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실력을 보이는 무용수였다. 한 번 들은 음악은 악보로 바로 옮겨 적어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예술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삶의 운명은 재능과 반비례했다. 부모에게서는 열 살 때 버림을 받았고 조국으로부터는 내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프랑스 출신의 무용수보다 평가절하당하는 수모를 겪었던 그는 열 여덟살 때 마린스키 극장에 입단하여 조역을 전전하다 쉰 한 살에 조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프티파의 휘하에 들어간 그는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프티파의 그림자에 가려 지내야만 했다. ‘백조의 호수’ 2막과 4막 호수 장면과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환상 장면 등 프티파의 안무 중에서도 백미로 손꼽히는 장면들은 실은 이바노프가 거의 100% 혼자서 완성시켰다고 추측된다. 알콜 중독자라는 수군거림과 탐욕스런 프티파의 욕심에 희생당한 채, 프티파는 자기 이름을 단 한 번도 정식 안무가로 걸어두지 못하고 평생을 가난 속에 살다가 67살의 나이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숨을 거두었다.

노승림/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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