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단거리패의 광대극 <변두리극장>은 획일적 세상을 조롱하는 ‘삐딱이 깽판’ 연극으로 배우들이 직접 연주까지 한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노래와 춤은 물론, 연기하며 연주도 한다. 연희단거리패의 2대 햄릿인 이승헌 배우장(지휘하는 광대)은 피아노를 친다. 4대 햄릿 윤정섭(딴죽 거는 광대)은 알토 색소폰, 신명은(노래하는 광대)은 아코디언과 피아노, 김아라나는 첼로와 피아노, 박현승은 트럼펫과 트롬본을 연주한다. 그런가 하면 이승복은 바이올린을 켜고 최동혁은 드럼을 두드린다. 배우가 악기까지 다루는 ‘액터 뮤지션’ 연극의 일종이다.
3일 막을 올리는 연희단거리패의 광대극 <변두리극장>이다. 독일의 배우·작가·영화제작자 카를 발렌틴(1882~1948) 원작의 민중소극((kabarret drama)으로, 획일적 세상을 조롱하는 ‘깽판 연극’이다. ‘카바레트 드라마’는 철학적 주제와 사회 비판을 위트와 유머로 표현하는 게릴라식 막간극. 발렌틴은 서사연극의 대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이자 동료였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광대들은 관객과 만나 웃고 떠들고 장난친다. <변두리극장>은 극장 속에 또 하나의 극장이 자리잡은 극중극 형식이다. 3개월간 맹연습으로 구성한 ‘배우 악단’은 모두 3개의 곡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2012년 초연 이후 꾸준히 악기 연습을 계속해왔다. 3곡은 완벽하게 생음악으로 연주하고 나머지는 기존 음악을 믹싱해 쓴다. 원작자 발렌틴도 북을 치며 연주하는 1인 오케스트라 역할을 했다. 광대극 연주는 삐딱하고 자주 틀려서 음악도 변두리스럽다. 솔직히 공연을 위한 연주이기 때문에 실력은 조금 부족하다. 원래 극단 내 악단을 꾸릴 생각이었는데, 1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완성된 형태를 갖추는 게 목표다. 어렸을 때 이기동, 서영춘, 이주일 쇼를 보면 트럼펫이나 색소폰을 연주했는데, 극장식 쇼를 생각하면 광대극의 음악 연주는 그리 낯선 게 아니다.”
왼쪽부터 <변두리극장>에 출연한 박현승, 윤정섭, 김아라나, 이승헌, 신명은, 최동혁, 이승복 배우. 연희단거리패 제공
연출을 맡은 오동식의 설명이다. 그는 2015년 연극 <백석우화>에서 백석 시인 역을 연기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다. 연희단거리패는 종종 배우 출신이 연출을 맡는다. 배우인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도 얼마 전 체호프의 <갈매기>를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변두리극장>은 ‘배우 연주’라는 형식적 특색 외에도 내용적으로 독특하다. 발렌틴의 22개 단막극 중 뽑은 10개 작품은 우스꽝스러운 세상에 삐딱하게 대든다. 게다가 20세기 초중반 독일의 상황이 21세기 한국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제봉공이 납품하는 회사에 전화를 걸자, 이 회사에선 제봉공을 관리과, 엔지니어 등 부서별로 전화 뺑뺑이를 돌린다. 이건 관료주의 비판. 잘못된 악보를 나눠준 지휘자는 단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잘못된 악보를 밀어붙인다. 이건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는 정부 비판. 광대극 곳곳에 사회 비판과 은유가 똬리를 틀고 있다.
“독일은 보통 코미디가 없는 사회라고 알려졌는데, 그런 나라에서 이런 연극을 했다는 게 흥미롭다. 그때 극장은 변두리 스타일로 촌스러웠다. 이번에 다시 이 광대극을 올리면서 초연 때보다 내용적으로 좀더 또렷하게 정리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오 연출의 설명이다. 이달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
<변두리극장>은 ‘2017 연희단거리패 기획작가전’ 중 하나다. 이어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부조리 연극의 진수 이오네스코의 <막베트>, 현대연극의 정수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등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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