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감독 출신
후배들이 모아준 돈으로 자작곡 모아 1집
장기하·자이언티·전인권 등 피처링
“신인가수 강승원입니다.”
2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쇼케이스장, 강승원(58)은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앉았다. “장난같이 시작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7~8년 전 후배들이 판을 못 내니까 보태라며 거금을 갹출했다.” 그러고도 좀 시간이 걸려서 2014년 3월11일을 시작으로 ‘강승원 1집 만들기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2014년 이적(‘나는 지금’), 존박(‘술’), 윤하(‘힘-담배’), 윤도현(‘오늘도 어제 같은 나는’)이 부른 곡들이 연달아 발표되었고 그해 말 1집으로 앨범 꼴을 갖추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해 린이 부른 ‘20세기 캐럴’, 전인권이 다시 녹음한 ‘서른 즈음에’까지를 넣어서 발표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프로젝트를, 곧 60대가 되는 그는 ‘노후 대책’이라고도 부른다.
쇼케이스에서 그는 첫 곡 정유미와 성시경이 부른 ‘안드로메다’를 부르다가 두 번을 멈췄다. “이건 에이아르(AR)가 아닌데…”라고 반주를 멈췄다가, 두 번째는 한참을 부른 뒤 올해 그래미 시상식의 아델처럼 멈췄다. 아델은 “이렇게 계속 (못)부르면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강승원은 “젊을 때 술을 많이 먹어서… 가사를 보고 할게요”라고 했다. 꾸밈 없는 목소리는 성시경과는 다른 맛으로 ‘오래된 서정’을 비춘다.
강승원은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간간이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불렀고 많은 이들에게 선뜻 곡을 주었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서 ‘서른 즈음에’를 직접 부르는 걸 들은 김광석이 자기에게 달라 해서 주었고, 김광석 추모 음악회에서 부른 ‘나는 지금…’은 이적의 노래가 되었다. 광고음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도 저작권료 안 들어오는 강승원의 곡이다. 이번 1집은 그렇게 내준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달라면 주었지만 이번에는 불러달라며 주었다. ‘신인가수’라고 했지만 그 혼자 부른 곡은 ‘달려가야 해’ 한 곡이다.
남의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장기하가 ‘디지털 월드’를 부르고, 자이언티가 ‘무중력’을 불렀다. ‘안드로메다’는 배우 정유미가 숨겨둔 노래 실력을 뽐내고, 뮤직비디오에도 나온다. ‘안드로메다’ 뮤직비디오는 후배가 비행기값만 들고 아이슬란드로 가서 찍어왔다. ‘술’의 뮤직비디오에는 존박, 강승원, 소속사 대표, 친구들의 무장해제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쇼케이스 역시 장기하, 존박, 양희은, 전인권 등이 노래를 부르는 ‘초호화판’이었다. 이쯤 되면 ‘노후 프로젝트’라는 게 금전적인 의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술’, ‘힘(담배)’, 사랑을 뜻하는 ‘무중력’까지 그가 좋아하던 것을 빼곡히 담은 앨범과 인생을 같이 즐겨준 친구와 후배들의 후원, 강승원은 누구보다도 남은 생애가 행복한 사람처럼 보인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에그플랜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