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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왕위 주장자들’ 연극으로 만나는 벚꽃대선

등록 2017-03-09 14:11수정 2017-03-09 21:25

입센 원작으로 154년만에 국내초연
‘확신의 아이콘’ 호콘 왕에 맞서는
‘의심의 아이콘’ 스쿨레 백작 암투
여기에 ‘공작정치 달인’ 주교 가세
메피스토펠레스·햄릿 연상시키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관전 포인트’
‘의심의 아이콘’ 스쿨레 백작 역의 유성주 배우. 세종문화회관 제공
‘의심의 아이콘’ 스쿨레 백작 역의 유성주 배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신영복 <강의>)

박근혜 대통령은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의 극단적인 사례. 자신의 불행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국가까지 위기에 빠트렸다. 10일 오전 11시 탄핵이 인용되면, 곧바로 대선정국. 앞으로 5년 한국을 이끌 대통령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근대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연극 <왕위 주장자>는 ‘대권’을 향한 욕망과 암투를 파헤친다. 과연 난세의 영웅은 누구인가.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3층 연습실. 23명의 배우 중 ‘대권’을 차지하려는 3명이 눈에 띈다. 13세기 노르웨이의 호콘 왕, 왕위를 뺏으려는 스쿨레 백작,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니콜라스 주교. 호콘 왕은 ‘확신의 아이콘’, 스쿨레 백작은 ‘의심의 아이콘’, 니콜라스 주교는 ‘공작정치의 달인’이다.

‘확신의 아이콘’ 호콘 왕 역의 김주헌 배우. 세종문화회관 제공
‘확신의 아이콘’ 호콘 왕 역의 김주헌 배우. 세종문화회관 제공
먼저 호콘 왕. “이 환난의 시대에 이 나라를 가장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요.” 호콘 왕을 맡은 김주헌 배우의 눈빛은 결연했다. 정통성을 내세우는 신념의 인물. 정적을 제거한 뒤엔 “하느님의 이름으로!”라는 말로 신적인 권능을 스스로 부여한다. 작품 배경인 13세기에 걸맞은 중세적 인물. 현실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는 결코 아니다.

그리고 문제적 인물 스쿨레 백작. “매일 밤 꿈속에서 난 노르웨이 왕입니다.” 자나 깨나 왕이 되고픈 욕망뿐. 스쿨레 역을 맡은 유성주 배우는 대사를 칠 때마다 눈알을 좌우로 재빨리 굴렸다. 욕망과 득실의 저울질, 고민, 의심…. 스쿨레는 가장 햄릿적이고 가장 현대적이며 가장 현실적인 인물. 권력에 대한 열망이 크면서도 자신이 과연 적법한 왕위 계승자인지 내적으로 고뇌하는 ‘포섭·포박·포획된 영혼’이다.

‘공작정치의 달인’ 니콜라스 주교 역의 유연수 배우. 세종문화회관 제공
‘공작정치의 달인’ 니콜라스 주교 역의 유연수 배우. 세종문화회관 제공
가장 흥미로운 건 니콜라스 주교. “내 최고의 무기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스쿨레의 마음속에 의심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는 동안 두 사람(호콘과 스쿨레)은 늘 싸울 것이다.” 니콜라스 주교 역의 유연수 배우는 놀랍도록 교활한 자신의 음모에 감동하듯 노회한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소심함 때문에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왕까지도 손안에 넣을 수 있는 ‘킹메이커’가 된 성직자. 부패한 교회권력의 일그러진 초상이면서, 공작과 조작이 판치는 현실정치의 민낯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가깝다.

서울시극단 20주년 기념작 <왕위 주장자들>은 1863년 입센이 쓴 5막짜리 대작이다. 국내 초연이라 공연 자체 의미도 크지만 작품 속 인물의 특징이 강렬하게 살아있다. 2014년 한국 초연한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이날 연습 첫 장면은 왕권이 바뀌는 ‘정권교체’ 순간. 인물들이 정치적 득실을 따지면서 배우들의 움직임도 급박해졌다. 혼란스러운 심리적 동선을 배우가 몸의 동선으로 드러낸 것. 갑자기 김 연출이 연습을 중단시켰다. “23명의 배우가 걸어가면서 대사를 이어받는 장면인데 다음 배우가 앞 배우의 대사를 바로바로 이어받아야 한다. 관객이 긴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 이달 31일부터 4월23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엠(M)씨어터. (02)399-100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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