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강 역의 김주완은 조목란 역의 김민정에게 5천만원을 내밀며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목란은 이 돈을 ‘북한 브로커’에게 넘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평양 엘리트’ 조목란은 아코디언 연주자. 남으로 넘어왔다가 좌절과 실의를 겪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 한다. 여기에 두 개의 분단이 중첩된다. 남북 사이 좁힐 수 없는 분단과 자본주의 남한 속에 상존하는 의식의 분단. 김은성 원작, 전인철 연출의 연극 <목란언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제3국을 떠도는 목란의 삶은 또 다른 ‘이산의 디아스포라’다.
#남북분단과 남한 속의 분단
먼저 남북분단. 탈북자의 눈으로 본 남한은 정치적 분단을 넘어 ‘돈이면 다 되는 사회’. 목란은 북의 부모를 서울로 데려와 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임대아파트의 보증금까지 사기를 당한다. 남한사회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다음, 남한사회 속의 분단. 태산·태강·태양 삼남매의 어머니 조대자는 ‘몸 팔고 술 팔아’ 룸살롱을 운영하며 자식을 키웠다. 옛 애인을 못 잊어 우울증에 빠진 역사학자 태산은 자살을 시도하고 철학교수 태강은 일하는 대학에서 과를 폐지하자 술로 연명하며, 소설가 태양은 무명작가의 초라함을 벗고자 시나리오 작가로 전업한다. 탈북자 ‘김정은’은 북한체제를 증오하는 ‘브로커’로 돈 되는 일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배금주의자다.
이게 바로 남한사회에 상존하는 ‘의식의 분단’. 남한은 ‘5천만원’으로 상징되는 속고 속이는 사회. 목란은 태강한테 사기를 쳐 5천만원을 얻지만, 브로커한테 사기를 당해, 홍등가로 팔려가고, 태양은 5천만원 때문에 대필작가로 전락한다.
<목란언니>는 북한노래 ‘려성은 꽃이라네’, ‘아직은 말 못해’를 등장시켜 북한 이해를 돕는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 편의 ‘사랑의 미로’
“나의 작은 가슴에 비춰준 햇발이여/ 이 세상 끝에 가도 영원히/ 우리 장군님 모습 빛나는 해돋는 백두여~” 허태산의 원룸에서 조목란이 기타를 치며 ‘해돋는 백두’를 부른다. 허태산이 “명곡을 개떡으로 만들어놨어. 제목이 뭔지는 알아? 사랑의 미로야, 사랑의 미로”라고 구박한다.
허태산은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라고 고쳐 부른다. ‘해돋는 백두’와 ‘사랑의 미로’ 사이 좁힐 수 없는 남과 북의 간극. 목란은 이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있을까?
“우 룬 산 멍 하이 스 뚜오/ 샹량 아이칭 취에 환 우창~” 연극의 마지막, 목란은 중국말로 ‘사랑의 미로’를 부른다. 홍등가의 목란은 고향에 갈 수 있을까. 혹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는 아닐지. 저 무국적의 붉은 조명 아래 목란의 젊은날도 하릴없이 저물었으니….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목란언니>는 2012년 초연했다. 그때 2만명이던 남한 내 탈북자는 현재 3만명으로 늘었고, 초연 당시 브로커 ‘김정일’은 ‘김정은’으로 바뀌었다. 브로커는 이번에도 목란에게 “내년 떡국은 공화국에서 먹게 해주가서”라고 꾄다.
내용면에서는 설명과 웃음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나머지는 객석의 상상력에 맡겼다. 마지막 장면, 목란이 노래하는 곳이 중국인지, 동남아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많은 탈북자들이 타이, 카자흐스탄 등 제3국을 떠돈다는 점에서, 탈북자에게도 이산·난민이라는 ‘디아스포라 정서’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이번 공연에선 스크린을 사용해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목란이 본 남한 사람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악을 쓰며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 두산인문극장 프로그램 중 하나로 4월22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