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 오페라 <붉은 자화상> 시범공연 장면.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12일 저녁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 윤두서 역의 바리톤 장철, 윤두서 딸 역의 소프라노 이효진, 테너 이대형, 테너 엄성화 등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한창 연습 중이었다. 극의 막바지, 윤두서의 독창 ‘붉은 자화상’이 울려퍼졌다.
“눈보라 속에 붉게 핀 홍매화/ 눈 쌓여 꽃 덮으니 가는구나 내 딸아/ 무엇을 일러주러 무엇을 깨우치러/ 떠…나…떠나 가느냐?// 너를 죽이고서야/ 너를 가슴에 묻고서야/ 일그러진 내가, 부끄러운 내가 보이네 (…) 빈 화폭에 남기노라// 내 부끄러운 얼굴에 새기노라/ 자화상 그려 남기노라.”
오페라는 윤두서 생애라는 겉감에 픽션을 덧대어 창작의 옷을 입혔다. 여행길의 화가 윤현이 300여년 전 윤두서가 자화상을 그릴 때 썼던 거울을 만지는 순간,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윤두서의 제자이자, 딸 영래의 연인인 영창은 3년 전 역모죄를 쓰고 비명횡사한다. 영창의 화첩을 받아든 영래는 폭설이 내리는 밤 바다로 나가 실종된다.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윤두서는 붓을 들어 자화상을 그린다. 부끄러운 자신을 비추는 거울, 곧 자화상이다.
■ 그림→오페라 ‘1000일 오디세이’
이 모든 게 한 장의 옛 그림에서 출발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장수동은 2014년 가을 광주에 들렀다가 우연히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봤다. 서거 300주기를 앞두고 국립광주박물관이 올린 특별전이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붉은색의 형형한 눈빛, 하늘로 치솟은 구레나룻, 한올 한올 이글거리는 터럭. “6척도 되지 않는 몸은 천하를 뛰어넘고, 긴 수염 나부끼는 얼굴은 윤택하고 붉구나.” 공재의 벗이었던 이하곤이 상찬한 모습 그대로였다.
장수동은 곧바로 그 이미지에 사로잡혔다. 먼저 박물관에 연락해 특별전 도록 <공재 윤두서>(2014)부터 구했다. 윤두서 자화상은 국보 240호로, 현존하는 18세기 이전의 유일한 자화상. 책장을 넘기며 자화상뿐 아니라 그림 하나하나를 기억의 책갈피에 꼭꼭 쟁여두고 틈만 나면 공글렸다. 아, 그림으로 오페라를 만들 순 없을까?
장수동은 친분이 남다른 바리톤 장철한테 구상을 털어놨다. 머릿속 영감이 다른 머릿속으로 옮겨가 수묵처럼 번졌다. 그림이 오페라로 탄생하기까지 1000일의 ‘창작 오디세이’가 시작됐다. 장수동은 “장철이 멘토가 됐다”고 했다. 당시 장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아카데미에서 오페라·뮤지컬을 강의했다. 장철은 다시 이곳에서 신예 작곡가 고태암과, 주목받는 극작가 김민정을 만났다. 고태암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를 거치며 오페라 작곡을 공부했다. 김민정은 영화 <해무>와 연극 <하나코>로 극작력을 인정받았다.
처음 오페라를 구상했던 장수동의 연출, 차세대 마에스트로 구모영의 지휘, 오윤균의 무대미술, 김평호의 안무가 힘을 보탰다. 그 뒤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마에스타오페라합창단이 떠받쳤다. 대본·작곡 심사, 음악 시연, 시범공연을 거쳐 지난해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6 오페라 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마침내 자화상에서 출발한 한 편의 창작오페라가 탄생했다. 5월6~7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붉은 자화상>이다.
음악적 특징도 눈에 띈다. 벨칸토식 창법을 지양하고 한국 음악의 시김새(선율 앞뒤를 꾸미는 장식음)와 장단을 살렸다. <수탐표어도>, <진단타려도>, <채애도> 등 그림 하나하나마다 세마치장단 등 음악을 달리했다. 마치 정영두 안무가가 바흐의 <푸가>를 무용으로 옮길 때 음표 하나에서 동작 하나를 따왔던 방식과 유사하다. 장수동이 옛 그림을 모티브로 오페라를 만든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바탕으로 창작오페라 <운영>을 제작·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외국에서도 옛 그림을 오페라로 제작한 예가 있다. 1916년 초연한 그라나도스 작곡 <고야의 사람들> 주인공들은 스페인 화가 고야의 작품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제인 캠피언 감독의 영화 <피아노>에서 음악을 맡았던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오페라 <페이싱 고야>(Facing Goya) 역시 고야를 소재로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드라마틱한 삶 때문에 국내외에서 뮤지컬 소재로 자주 활용됐다.
허난설헌 시어는 ‘꽃과 난의 군무’로
옛 시도 창작발레로 탄생했다. 안무가이자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은 2012년 우연히 허난설헌(1563~1589)의 시를 읽게 됐다. 허난설헌은 자신을 외롭게 한 남편, 두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다 26살에 요절했다. 특히 강효형을 놀라게 한 시는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허난설헌의 시를 창작발레로 만든 <허난설헌_수월경화>. 국립발레단 제공
강효형은 곧바로 시어의 색채 이미지에 매혹됐다. 언젠가 꼭 춤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뜻이 있으니 길이 열렸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님이 제가 안무한 소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소속) 안무가가 만든 작품을 많이 보셨으니까, 한국에서도 안무가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발레단이 유명해지려면 레퍼토리가 있어야 하니까 저한테 기회를 주셨어요. 게다가 한국적인 것이라서 잘 맞아떨어진 겁니다.”
먼저 시의 이미지에 맞는 음악을 찾고, 머릿속에 움직임들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가야금 명인이자 한국 음악 바탕의 현대음악 작곡가 황병기의 <춘설>, <하마단>, <침향무>를 골랐다. 그렇게 완성된 게 창작발레 <허난설헌_수월경화(水月鏡花)>. 수월경화는 ‘물에 비친 달과 거울에 비친 꽃’으로, 보이지만 잡을 수 없음을 뜻한다. 국립발레단이 5월5~7일 서울 예술의전당 씨제이(CJ)토월극장에서 올린다.
시는 여성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춤은 여성성과 모던함을 아울러 그만의 안무스타일로 만들었다. 고전발레를 기본으로 하되, 살아있는 기와 한국적인 호흡을 살렸다. 직선·대칭보다 곡선을 살리려 팔 움직임을 복잡하게 했다. 동양화를 표현하는 느낌, 꽃이 만개하는 느낌, 시들어가는 느낌을 무대에서 펼치기 위해서였다. 주인공이나 솔리스트가 하는 파드되(2인무)도 많지만, 8명과 10명이 펼치는 여성 군무도 많다. 시의 이미지를 춤으로 만든 것이어서 앙상블(군무)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강효형은 2015년 첫번째 안무작 <요동치다>, 2016년 <빛을 가르다>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 주말 강효형에게 낭보가 날아왔다. 국제무용협회가 주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 당스’ 올해의 안무가 부문 수상 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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