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한겨레> 자료사진
“이제 게릴라 시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고자 한다. 의도적으로 성격과 색깔을 지운 새 공간인 명륜동의 ‘30스튜디오’에서 난공불락의 아지트를 만들 것이다.”
이윤택(사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게릴라극장의 폐관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15-29번지’ 게릴라극장이 16일 연극 <황혼>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연희단거리패가 2004년 동숭동에 처음 짓고, 2006년 혜화동으로 옮겨 재개관한지 11년 만이다.
대학로의 변방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오프 대학로의 중심” 또는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불렸다. 거리패뿐 아니라 다른 극단·작가·연출가에게 문호를 개방해 모두 216편의 작품이 이 무대를 통해 세상과 교감했기 때문이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극단 코끼리만보의 김동현, 극단 드림플레이테제21의 김재엽, 극단 걸판의 오세혁, 극단 해적의 황선택 연출 등이 무대에 섰다. 돈이 없는 극단에게는 대관료 대신 수익의 절반만 받고 극장을 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예술감독 등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여파 등으로 각종 지원금이 끊기고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폐관에 이르렀다.
이 예술감독은 “연극은 수공업적인 예술이라 직접 공을 들여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게릴라극장은 진주 같은 곳이었다. 이런 극장이 지속하지 못하는 풍토에서 연극의 다양성은 불가능해지고 상업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게 된다”며 연극 안팎의 여건 악화를 우려했다.
한 작품의 막공(마지막 공연)이 아니라 한 극장의 막공이 끝나자 ‘폐관 축하잔치’가 벌어졌다. 배우이자 극장 살림을 이끌어온 김소희 대표는 극장을 찾은 관객과 연극인에게 “정말 고맙다”며 큰절을 한 뒤 잠시 울먹였다. 김 대표는 “게릴라극장은 내게 연극 교실이었고 정말 행복한 극장이었다”고 돌아봤다.
이날 폐관 모임에는 배우 손숙, 손진책·이병훈·박근형·오세혁 연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 등 연극계 인사는 물론 일반 관객들까지 참여해 80석 극장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극장이 문을 닫자, 극장 앞에는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쪽지가 가득 붙었다. “극장까지 뛰느라 차오르던 숨까지 그리울 거예요. 게릴라극장, 안녕! 정말로 행복했어!”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