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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박정희는 구세주고 초인이다?

등록 2017-06-02 11:52

10일 막 올리는 연극 ‘국부’
‘블랙리스트’ 전인철 연출
조갑제가 쓴 전기 등에 기반해
“불사조 박정희” 보여줘
지난해 <해야 된다> 공연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지난해 <해야 된다> 공연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총구 앞에서, 그리고 가슴을 관통하고서, 또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다가오는 제2탄을 기다리면서 박정희가 보여준 행동은 세계 암살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초인적인 모습이었다. 김재규의 벽력같은 고함과 차지철을 쏜 첫 총성, 그리고 한 4초간의 유여. 이때 박정희는 “뭣들 하는 거야!”란 한마디만 외친 후 그냥 눈을 감고 정좌한 채 가만히 있다가 김재규의 총탄을 가슴으로 받았다. 그리고 “난 괜찮아…”란 말을 두 번 남겼다.”

극우논객 조갑제가 쓴 박정희 전기 <박정희> 13권 ‘마지막 하루’ 중 ‘초인’은 저렇게 시작한다. 조갑제의 평소 신념이나 경향을 알고 있다면, 책의 대체적 논조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예감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전인철이 연출하는 극단 돌파구의 연극 <국부>는 전기 <박정희> 중 ‘초인’을 일부 차용한 작품이다. 제목부터 나라의 아버지를 뜻하는 ‘국부’(國父)인데다, 주요인물로 박정희가 등장하고, 심지어 일부 장면에 조갑제가 쓴 전기가 그대로 나오다 보니, 박정희를 찬양하는 작품으로 오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실제로 그렇게 읽어도 무방하리만치 작품은 해석의 문을 열어두었다. 이유는 이렇다.

<국부>는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박정희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의 인터뷰다. 여기에는 갑남을녀부터 박정희의 동향 사람, 그리고 당시 수행비서까지 다양한 이들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박정희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구세주나 영웅으로 평가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눈물 많고 정 많았던 인간적인 인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고문과 살인을 자행했던 독재자, 일본과 미국에 들러붙어 살아남은 기회주의자라 말하는 이도 있다. 전인철 연출은 어느 편의 주장에도 힘을 싣지 않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의 이야기다. 종교인이 아니어도 모세의 기적은 들어보았을 터. 연극은 모세의 탄생에서부터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구세주가 되는 과정,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을 담는다. 그중에서도 연출가가 주목한 대목은 모세가 이스라엘인들로부터 원망과 의심, 비난, 분노를 샀던 부분에 있는 듯하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났지만 굶주림과 갈증, 고통, 죽음의 공포가 찾아올 때마다 이스라엘인들은 모세를 공격했다.

지난해 <해야 된다> 공연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지난해 <해야 된다> 공연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초인’에서야 박정희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초인’은 검열에 저항하는 젊은 연극인들이 지난해 6~10월 매주 한 작품씩을 무대에 올린 축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에서 공연한 <해야 된다> 중 ‘초인’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초인’ 1부는 5?16이 군사쿠데타가 아닌 국민혁명인 이유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다. 2부에서는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의 모습을 재현한다. 전인철은 이 장면을 반복 연출하여 박정희의 초인적 기개를 드러내는 듯 보인다. 그리고 3부에서 조갑제의 <박정희> 중 ‘초인’ 일부가 그대로 무대화된다.

이렇게 거친 요약으로만 보면 <국부>는 추종자에겐 자랑스러울 수 있을, 비판자에겐 불쾌할 수도 있을 작품으로 비친다. 하지만 연출가의 면면을 보면 그것이 오해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인철은 파업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노란봉투>와 탈북자의 이야기를 그린 <목란언니>, 그리고 청소년 문제를 다룬 <엑스엑스엘(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등을 연출하며 지난 정권에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지난해에는 ‘박근혜 퇴진 및 문화행정 책임자 처벌 촉구’ 1인시위에 나섰던 연출가다. 이번 작품을 두고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구세주 박정희, 불사조 박정희가 살아 있다”며 그것을 보여주고자 <국부>를 기획했다고 말한다.

그 시절 악명 높던 중앙정보부 근처에 세워진 남산예술센터에서 박정희의 망령이 살아날 것인가? 확인은 10일부터 가능하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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