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첸코가 1930년 찍은 <트럼펫을 부는 선구자>. 트럼펫을 힘차게 부는 소년의 얼굴 바로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포착한 실험적인 사진이다. 로드첸코는 구체적인 삶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진만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매체라고 단언하며 사진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구도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 사진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몰고 온 열광의 산물이다. 힘껏 트럼펫을 불어젖히는 소년의 팽팽하고 긴장된 얼굴이 사진 속에 가득 찼다. 찍은 이의 시선은 눈앞 정면이 아니라, 소년의 턱밑에서 바로 위쪽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통 쳐다보는 시선의 관행을 거부한 것이다. 이 실험적 사진은 배꼽 시점으로 보는 인류의 시각적 관습을 혁신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트럼펫을 부는 선구자>라는 제목의 이 사진을 찍은 이는 알렉산드르 로드첸코(1891~1956)라는 러시아 예술가다. 한국 대중에겐 생소하지만, 그는 20세기 미술사에서 구축주의(구성주의) 사조라는 놀라운 혁신운동을 일으킨 주역 중 하나다. 예술을 위한 예술, 현실과 등진 당시 서구 예술의 한계를 벗어나 생활, 생산과 밀착되는 혁신적 시각예술을 구상하고 실제로 현장에 구현했던 몇 안 되는 거장이다.
지금 경기도 분당의 사진전문전시장인 아트스페이스 제이에서는 러시아 혁명 100돌을 맞아 국내 처음 로드첸코의 사진예술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구자 박상우 중부대 교수의 기획으로 지난달 30일 개막한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로드첸코 사진’전이다. 올해 서구 미술관에서 러시아 혁명 100돌 미술전이 속속 열리는 데 비해 국내는 제대로 된 기념전 하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반가운 자리다. 미술사학도들이 책에서만 훑고 지나가기 일쑤였던 러시아 구축주의 예술의 명작들을 원화로 처음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로드첸코는 자연·역사 등으로부터 독립되어 작가가 그린 화면의 절대적 자율성과 정신성의 극한을 추구했던 러시아 모더니즘(절대주의) 회화의 숭배자였다. 저 유명한 말레비치의 검은 도형 그림을 계승해 <검정 위의 검정>을 그렸고, 1921년 단색조 그림 <순수한 색채들: 빨강 노랑 파랑>을 통해 회화의 죽음을 선언한다. 그는 이후 러시아 혁명의 사회주의 이념을 좇아 산업생산, 사회주의 이상과 잇닿는 선전그래픽, 포스터, 포토몽타주, 디자인 등의 생활예술가로 돌아서게 된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흐르는 전시장에서 만나는 출품작 30여점은 1920년대 초반부터 30년대 중반까지 로드첸코가 구상했던 구축주의 사진의 흐름들을 드러낸다. 격자창의 그물 같은 그림자에 뒤덮인 34년작 <라이카를 든 소녀>의 대형 프린트 휘장을 중심으로 <트렘펫을 부는 선구자>와 대각선 구도로 연출된 모스크바의 성당 계단을 오르는 모자, 8층 건물에 뻗은 비상사다리를 아래쪽에서 포착한 24년작 <비상사다리> 등을 볼 수 있다.
생활과 예술의 일체화를 추구했던 로드첸코는 회화적 재현과 영감을 부정했다. “오직 제작하고 가공하고 구성해야 한다”는 명제에 가장 충실한 매체를 사진으로 보고, 배꼽 위아래 시점에서 응시하는 하이-로 앵글, 대각선 구도, 다양한 시점의 초상사진 등으로 사진적 구도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했다. 극단적인 미래주의자란 평가도 받지만, 그의 시도들은 이후 20세기 사진미학의 한 전범이 되어 많은 사진가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전차철로> <퍼레이드 행렬> <담배 파는 소녀> 등에서 혁명의 역동적 에너지가 일상에 넘치던 20~30년대 모스크바 거리의 생생한 현장감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묘미다. 로드첸코 스타일의 뿌리인 1910년대 절대주의 화파 시절 작업 세계나, 30년대 이후 스탈린의 반동적 억압으로 예술계와 단절된 채 ‘투명인간’으로 삶을 마친 말년 등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거나 빠진 한계도 드러나는 전시다. 10일엔 로드첸코 사진에 대한 전문가 심포지엄도 열린다. 전시는 30일까지 열렸다가 한달을 쉬고 8월1~31일 다시 차려진다. (031)712-752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아트스페이스 제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