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나온 일본의 건축 거장 이소자키 아라타의 공중도시 모형. 도심 곳곳에 뿌리박은 거대한 기둥에 기생하며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미래도시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50여년 전 일본 도쿄가 꿈꿨던 도시의 미래는 지금 봐도 혁신적이었다.
도심 곳곳에 거대한 고층 기둥을 박은 미래도시 모형이 진열장 안에 펼쳐졌다. 기둥에 살림집과 건물들이 달라붙어 세포처럼 증식하는 ‘공중도시’다. 원통형 건물에 생활공간인 캡슐들이 가득 박힌 타워도시도 있다. 한켠 벽엔 항구 바깥 바다에 인공시가지의 뼈대를 만들어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해상도시 동영상이 흘러간다.
1960년대 일본 건축 대가들이 짰던 도쿄의 미래 도시 계획은 지금 한국 도시들의 미래상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다가왔다. 지난 13일부터 서울 운니동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2층 실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분투하는 도시들’전은 오늘날 일본이 건축강국으로 올라서는 데 디딤돌이 되었던 과거 도쿄 도시건축 계획들을 국내에서 처음 조명하는 자리다.
60년대 도쿄는 2000만명이 사는 거대도시로 급성장했다. 폭발적인 인구집중과 도시화로 교통체증, 대기오염, 주거 부족, 지반 침하 등의 문제가 닥치자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도시 개조 방침을 추진한다. 당대 일본의 중견, 소장 건축가들은 이에 맞춰 야심찬 도쿄 미래도시 프로젝트들을 내놓았는데, 이 구상들이 이후 일본 현대건축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 현대건축의 대부로 꼽히는 단게 겐조의 <도쿄계획 1960>을 필두로, 단게의 가르침 아래 공부한 기쿠타케 기요노리, 오타카 마사토, 마키 후미히코, 구로카와 기쇼, 이소자키 아라타 등은 일본 건축의 대표 브랜드가 된 메타볼리즘 스타일의 다기한 도시건축 구상을 제안했다. 이번 전시는 혁신과 파격을 앞세운 당대 도쿄 개조 프로젝트의 도시건축 모형과 각종 논문, 사진 등을 작가별로 일별해 선보이면서, 도시팽창의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건축가들이 어떤 고민과 대안들을 모색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는 모두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도쿄 도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과거 동서양의 이상도시 구상부터 현재까지 이뤄진 도시계획의 빛과 그늘을 조망한다. 특히 눈길을 붙잡는 건 국내 건축인들 사이에서도 종종 회자되곤 하는 일본 특유의 유기적 건축론인 ‘메타볼리즘’에 대한 부분이다. ‘신진대사’로 번역되는 메타볼리즘은 도시를 생명체로 보고 도로 구획, 교통 통제 등의 기계적 개입을 넘어 사람들의 교류까지 포함한 도시건축의 유기적 확산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메타볼리즘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단게 겐조의 도쿄계획에 대한 여러 논문과 자료들, 구로카와 기쇼의 농업도시 제안, 기쿠타케 기요노리의 타워도시, 이소자키 아라타의 공중도시 모형 등이 나와 전세계 건축가들에게 충격과 영감을 준 메타볼리즘 건축의 실체를 접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의 명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도쿄의 건축공간을 스펙터클한 시선으로 조망하고 분석한 동영상이 이해를 돕는다. 복잡성이 강한 거대도시에서는 단순한 도시계획의 온전한 실행만이 요체가 아니며 사람, 공간의 상호작용과 지역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4섹션의 결론글도 인상적이다. 전시는 실크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열린 뒤, 다음달 7일부터 8월26일까지 대구 경북대 미술관으로 옮겨져 다시 열린다. (02)765-3011~3.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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