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101> 시즌2의 주학년이 자신의 지하철 광고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주학년은 가족 관련 악플에 시달렸고 소속사는 강력한 대처에 대한 공지를 하기도 했다. 크래커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에이핑크가 폭발물 테러 위협을 받았다. 트와이스도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각기 팬을 자처하면서, 팀에 불만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이보다는 덜 극단적이지만, 걸그룹 멤버가 남성과 있는 사진을 찍어 언론사에 ‘제보’한 팬도 있었다. 팬이라면서 아이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때, 팬들은 보통 ‘그건 진정한 팬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를 살피기 위해선 팬의 부류를 나눠볼 필요는 있다.
사실상 ‘일반 대중’을 ‘팬’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팬은 ‘추종자’라 불러도 좋겠다. ‘우상’을 올려보는 존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팬덤은 점차 ‘지지자’의 양상도 띠게 되었다. <프로듀스 101>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양한 사회현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지자들은 자신의 아이돌이 공적인 영역에서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봉사’도 한다. <프로듀스 101>의 경우 서바이벌에서 선발되는 것이 아이돌과 팬의 목표였다면, 일반적인 아이돌 팬덤의 경우 차트나 시상식에서의 우수한 성적, 더 나아가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커리어의 구축까지 포함된다.
자원봉사의 방법은 많다. 음원 구매나 투표는 기본이다. 자료를 만들어 유포하기도 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광고도 낸다. 현장에 음료나 식품을 보내 관계자들을 대접하는 일도 흔하다. 지지자들은 아이돌을 올려보지 않는다. 오히려 챙겨줘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지금 아이돌은 낮은 곳에 임한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에 가깝고, 팬은 직간접적으로 서비스를 ‘구매’한다.
그러니 팬들이 자신을 ‘소비자’로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럽다. 특히 작년부터는 소비자 운동의 결을 띠는 팬들이 가시화됐다. 아이돌의 콘텐츠 속 여성혐오적 요소를 팬으로서 지적하기도 하고, 기획사와 아이돌도 이를 인정해 콘텐츠에 수정을 가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활동에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특정 멤버의 해고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는 아이돌 팬덤이 멤버 변동에 극도로 민감함을 생각하면 무척 이례적이었다. 팬덤이 지지자를 거쳐 소비자가 될 때, 추종자로서는 하기 어려운 발언들도 가능해지는 조짐이다.
하지만 이를 ‘소통’ 등의 키워드로 훈훈하게만 정리하긴 어렵다. 팬덤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사건들의 양상이 소비자로서의 팬이란 정체성과 밀접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멤버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때, 가장 공격적인 극언을 일삼는 것은 바로 같은 그룹 다른 멤버의 팬인 경우도 허다하다. ‘네가 팀의 커리어를 망쳤다’는 것인데, 이는 곧 자신이 구매했다고 여기는 재화의 가치가 떨어지게 됐다는 항의다. 팬 사인회에서 부적절한 감정노동을 요구하거나, 이에 부드럽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서두에서 말한 협박 사건들 역시 말하자면 ‘진상 소비자’의 과잉 클레임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까지의 팬덤 담론은 추종자를 중심으로, 헌신적인 지지 행위까지를 다룬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살펴본 사례들은 소비자라는 새로운 인식을 검토하지 않고는 이해의 구멍이 생긴다.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본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럴 때, 해결 책임의 부담은 엉뚱하게도 팬들이 지게 된다. 부정적 행위가 지지자로서 팬의 목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모적인 줄 알면서도 ‘진정한 팬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게 된다. 담론과 산업이 팬 인식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소비자로서의 팬을 좀더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그 부작용에 대한 대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이돌로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