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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나비의 현기증’ 과 ‘디아블로’

등록 2005-11-16 17:49수정 2005-11-17 14:35

서커스, 예술의 자양분을 수혈받다
한번 가속하면 멈출 수 없는 고난도의 곡예는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그뿐이다. 향수와 탄성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는 현실이 차츰 서커스의 운명이 되었다. 부득불 살아남기 위해 공중으로 도약하기보다 대지로 떨어지는 것이 최근 현상이다. 벨기에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11월4일~13일, 극장 용)과 캐나다 서커스 <디아볼로>(11월9일~13일, 성남아트센터)는 그 전형적인 예다. 무대를 대지삼아 현대무용, 음악, 퍼포먼스 등 인접한 예술의 자양분을 받아들여 서커스의 새 움을 틔웠다. 선굵은 테크닉에 아기자기한 구성의 즐거움과 동시대적 의미까지 꽃피울 심산인 것이다.

<나비의 현기증>은 번갈아 던져지는 공과 추락하는 신체를 나란히 놓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 몸의 인연을 들이민다. 얏호! 코를 막고 솟아오르는 새처럼(황인숙의 시) 되튀는 동작들의 이음새는 느슨하다. 하지만 자유롭고 경쾌한 흐름은 서커스의 향수와 함께 포스트모던의 관대한 감성으로 넘쳐오른다. 공과 신체를 연결짓는 숨은 충동은 발랄하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낙천적인 음악을 깔아준다. ‘날아가는 공에게 의식이 있다면, 혼자서 난다고 생각하리라’던 농담 앞에서 이 작품은 모든 것은 관련되어 있고 무엇인가의 덕분이라는 견해를 슬그머니 제시한다. 서커스의 올과 결이 살아있으면서 몸 쓰는 맛이 소박하다.

<디아볼로>는 몇 개의 미끈둥한 단편을 통해 원형적이며 신화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다분히 극적이며 이국적인 음악은 중세적인 내음으로 가득하고, 동작은 서커스의 고유한 결이라기에는 낯설다. 전통적인 서커스를 경전처럼 떠받들기보다는 독자적인 추상의 시로 이끌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하다. 훨씬 더 현대무용에 접근한 동작은 구체적인 세트미학에 힘입어 세련된 드라마로 나아간다. 대문 앞에서의 몸짓 시위, 남녀가 반구형 속으로 들어가는 ‘돌 속의 사랑’, 굴리고 싶어지는 거대한 수레바퀴 그리고 우리 삶처럼 난간까지 없앤 채 출렁이는 배의 스펙터클이 이어진다. 다만 지나치게 매끈하고 서커스의 앙금을 걸러낸 것이 다소 아쉽다.

음악에 비유하면 <나비의 현기증>이 브람스이고, <디아볼로>는 칼 오르프이다. 전자는 공던지기와 공중곡예 그리고 전통적인 아크로바틱의 언어가 빼곡하다. 후자는 원형 지향의 낯선 세트 위에서 새로운 극적 퍼포먼스를 추구한다. 우직하게 서커스를 지키면서 다른 예술을 소화하는 신고전주의와 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서커스를 해체 재구성하는 급진주의가 묘하게 대조적이라 흥미롭다.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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