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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타오른 천재 색소포니스트
재즈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가 찰리 파커다. 색소포니스트였던 그는 20세기 중반 출현하여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과 더불어 혁신적인 ‘비밥’을 창시, 미국 재즈계를 강타했다. 아직 어렸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우상이자 애증의 대상이었던 인물이기도 한 그는 그러나 음악적인 업적만큼이나 기벽도 남달랐다. 1920년 태어나 1955년 사망하는 짧은 인생이었지만 음주와 마약, 그리고 여성편력을 일삼으며 보통 사람이 환갑이 넘어도 다 채우지 못할 사고를 그는 치고 다녔다.
그의 본명은 찰스 파커 주니어였지만, 사람들은 늘 그를 ‘버드’(bird), 혹은 ‘야드버드’라고 불렀다. 열 네 살 때 다니던 학교를 뛰쳐나온 그는 알토 색소폰을 들고 전전한 지 3년이 지난 다음에야 간신히 클럽 무대에 설 수 있었으며 그나마도 솔로가 아닌 세션의 일원으로서였다. 그의 전성기는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1940년 처음 한 무대에 섰던 이들은 이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테크닉을 기반으로 ‘비밥’을 소개, 이를 재즈의 주류로 정착시켰고 그들 스스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재즈 듀오’로 전 미국을 평정했다.
찰리 파커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교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기벽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무대에서 도통 긴장하는 법을 몰랐다. 언제나 여유롭다 못해 뜬금없기까지 한 그의 무대 매너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가 남긴 스캔들과 사고는 10대 시절부터 복용한 마약과 음주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느 재즈 아티스트들처럼 그 또한 당시 유행하던 헤로인의 상습 복용자였다.
1948년 초 시카고로 초청된 파커의 밴드는 아가일이라는 클럽에서 연주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난 버드는 이미 수면제 복용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무대에 오른 그는 그러나 색소폰을 입에 문 채로 서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깨어난 그는 더더욱 말썽이었다. 밴드가 이 곡을 연주하고 있으면 그는 갑자기 저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밴드가 파커에 맞춰 부랴부랴 음악을 바꾸면 금세 다른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의 솔로 파트가 시작되자 밖으로 나가려고 들었다. 멤버들은 파커를 어떻게든 깨우려고 노력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심지어 그의 귀에 대고 트럼펫을 불어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첫 번째 무대가 끝난 뒤 버드는 사라졌으며, 그는 클럽이 문을 닫은 뒤 근처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잠든 채로 발견되었다. 클럽 주인은 파커 밴드와의 결별을 공식 통보했고 밴드는 뉴욕으로 돌아갈 돈을 마련 못해 시카고에서 오도 가도 못했다. 책임을 느낀 파커는 연주자 조합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파커의 기행에 질릴 대로 질린 조합회장은 권총으로 위협하며 파커를 내쫓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파커는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 때 왜 날 깨우지 않은 거야?”
1954년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 전해지면서 파커의 파멸은 초읽기를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마약복용과 두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그는 1955년 심장마비로 서른 다섯이라는 안타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노승림/공연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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