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가 래퍼를 평가하다니!”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엠넷)가 시작됐을 때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였다. 처음 알려진 것과 달리 아마추어와 신인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덜 알려진 기성 래퍼들까지 오디션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많은 힙합 아티스트와 힙합 팬들은 ‘리스펙트’(Respect·존중)의 부재를 거론하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러나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지도가 오르고, 이른바 ‘행사 머니’로 부유해진 래퍼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온갖 왜곡된 인식을 주입한다며 손가락질받던 <쇼미더머니>가 순식간에 기회의 땅이 된 것이다. 프로그램을 비난하거나 말을 아낀 채 눈치 보던 래퍼들은 기꺼이 가슴팍에 번호표를 달았다. 많은 래퍼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민자들처럼 해당 프로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5년간 이어지면서 힙합 팬들도 어느새 이 같은 광경에 익숙해진 듯하다.
최근 시작한 시즌6에서도 바뀐 건 없었다. 나름대로 커리어를 쌓아온 기성 래퍼들이 그들보다 상업적으로 더 잘나가는 기성 래퍼들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민망하고 적응하기 어렵다.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 절대다수의 아티스트가 본인의 작품을 경솔하게 평가하는 것, 혹은 평가하는 행위 자체에 불편한 심경을 표해왔다. 그래서 흔히 창작자와 평론가를 두고 대척점에 있다고들 한다. 하물며 아티스트가 아티스트를 대놓고 심사한다면 어떠하겠는가. 특히 자존심을 극도로 내세우고 존중과 존경을 중요시하는 래퍼들 사이에서 이는 대단한 무례이자 금기다. 더구나 좁디좁은 한국 힙합신에서 그들 대부분은 최소한 두 다리 건너면 얽힌 동료이기도 하다. 더 가깝게는 크루이거나 절친인 경우도 있다.
<쇼미더머니>를 조망하면서 절대 권력자 밑으로 층층이 늘어선 카스트제도가 떠올랐다. 실제로 <쇼미더머니>엔 카스트 제도처럼 네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우선 꼭대기엔 절대 권력 피디들이 있다. 심사위원 래퍼를 선택하고 룰을 만든다. 두 번째 층에는 피디들로부터 선택받고 권력 일부를 위임받은 심사위원 래퍼들이 있다. 이들은 피디가 건네주는 룰에 따라 서로 경쟁하고 견제한다. 세 번째 층엔 기성 래퍼들이 있다. 복잡한 심경과 자기기만, 혹은 정신승리로 무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쌓인 경력으로 심사위원 래퍼의 간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네 번째 층엔 신인 래퍼와 아마추어 래퍼들이 자리한다. 거대한 체육관을 가득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힙합이 탄생한 건 파티장이었지만, 힙합이 성장한 건 부당하고 저열한 계급 시스템의 한가운데에서였다. 많은 래퍼가 이 같은 현실을 꼬집고 엿을 날리며 맞섰다. 그러나 한국 힙합신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다. 한때 누구보다 힙합문화의 멋을 강조하고 왜곡을 비판하던 래퍼들이 스스로 계급 시스템 안에 걸어들어가 기꺼이 장단을 맞춘다. 물론, 다수의 피권력자 래퍼들을 무작정 비난만 할 순 없다. 그럼에도 이것이 한국힙합의 현재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강일권 <리드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