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두 ‘자화상’
아시아 큐비즘전
천재화가 피카소는 1907년 대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세상에 내놓으며 20세기 현대미술의 서막을 알렸다. 제 각기 다른 시점에서 얼굴을 그린 ‘괴물 여인’ 5명으로 구성된 이 그림은 원근법으로 사물을 닮게 그리는 기존 회화의 법식을 팽개친 것이었다. 여러 시점에서 본 사물의 입체적 단면들을 하나로 종합해 보여주는 이른바 입체주의(큐비즘)의 등장은 ‘재현 기계’인 사진의 등장으로 주눅 들었던 당대 서구의 젊은 작가들에게 모더니즘 혁명의 새 활로를 열어주었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 서 등장
반세기 뒤 아시아 작가들 열광
11개나라 76명 작품 113점 전시
근현대 미술 성찰기회 삼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지난 11일부터 이 큐비즘에 얽힌 전시판을 차렸다. 그런데 전시 제목과 출품작들이 묘하다. ‘아시아 큐비즘:경계 없는 대화’?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등장할 당시 대부분 식민지였던 아시아권 11개 나라 작가 76명이 40~50년 뒤 뒤늦게 열광하며 받아들인, 유행 지난 큐비즘 작품들 113점이 모였다. 속된 말로 세계 미술판의 변방에서 ‘뒷북 치듯’ ‘통과의례처럼’ 작업한 작품들이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국제교류기금,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의 학예사들은 2년여 동안 아시아 미술판 곳곳을 뒤지며 출품작들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근현대 미술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 2차 대전 뒤 독립하면서 오직 서구미술의 흐름만 맹신하며 자국의 근현대 미술판을 ‘속도전’으로 만들었던 지난날을 함께 성찰해보자는 뜻이다.
“네 기관의 큐레이터들이 각 나라의 미술판을 돌며 일일이 작품들을 보고 골랐다”는 미술관쪽의 설명처럼 이 기획전은 공을 많이 들인 티가 곳곳에서 난다. 제목처럼 전시장은 20세기 초 피카소와 브라크로부터 비롯되어 미술판의 지각변동을 몰고온 입체주의 양식이 후발주자인 아시아 나라들의 미술계에 어떻게 전파되고 변모했는지를 짜임새있게 보여준다. ‘탁자 위의 실험-정물’ ‘큐비즘과 모더니티’ ‘큐비즘에 있어서의 신체’ ‘국토-국민의 창생’ 네 주제로 나눠진 전시장에는 중국의 리화, 인도의 수자, 인도네시아의 아마드 사달리, 일본의 요로즈 데쓰고로, 한국의 김흥수, 말레이시아의 아마드 자말, 필리핀의 마난살라, 싱가포르의 청수핑, 스리랑카의 조지 키트, 타이의 솜폿 우파인, 베트남의 타티 등의 주요 작가들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눈에 생소한 이웃 나라들의 40~50년대 입체파 계통 작품들을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입체주의가 중심축이긴 하지만 작업들의 진폭은 넓다. 자국의 근대 미술문화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국제적 유행을 빨리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개인적 욕망과 취향 등이 섞여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회화를 대상 자체로 인식하는 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을 접어놓고 입체파의 다면 시점만 빌어오거나 거기에 자국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나 풍물을 대입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원래 단색조였던 입체파 그림의 이미지를 알록달록한 다채색으로 바꾸거나 전란의 참상 같은 서사적 메시지의 매개체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이미 20년대 레제, 로트 같은 작가들에게 입체주의를 배운 일본, 인도 작가들은 다른 나라 작업과 내용적 편차를 보이기도 한다. 김인혜 학예사는 “아시아권 큐비즘은 50년대 급속히 유행했다가 60년대 추상표현주의로 급속히 바뀐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과 공통점이 많다”며 “서구 미술사의 도식을 추종했던 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당사국들이 함께 분석하고 도록 등의 자료로 축적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19일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아시아 20세기 미술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린다. (02)2022-0613.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반세기 뒤 아시아 작가들 열광
11개나라 76명 작품 113점 전시
근현대 미술 성찰기회 삼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지난 11일부터 이 큐비즘에 얽힌 전시판을 차렸다. 그런데 전시 제목과 출품작들이 묘하다. ‘아시아 큐비즘:경계 없는 대화’?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등장할 당시 대부분 식민지였던 아시아권 11개 나라 작가 76명이 40~50년 뒤 뒤늦게 열광하며 받아들인, 유행 지난 큐비즘 작품들 113점이 모였다. 속된 말로 세계 미술판의 변방에서 ‘뒷북 치듯’ ‘통과의례처럼’ 작업한 작품들이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국제교류기금,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의 학예사들은 2년여 동안 아시아 미술판 곳곳을 뒤지며 출품작들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근현대 미술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 2차 대전 뒤 독립하면서 오직 서구미술의 흐름만 맹신하며 자국의 근현대 미술판을 ‘속도전’으로 만들었던 지난날을 함께 성찰해보자는 뜻이다.
필리핀 작가 빈센트 마난살라 ‘모자’, 중국 작가 치레이레이 ‘청춘’ (왼쪽부터)
“네 기관의 큐레이터들이 각 나라의 미술판을 돌며 일일이 작품들을 보고 골랐다”는 미술관쪽의 설명처럼 이 기획전은 공을 많이 들인 티가 곳곳에서 난다. 제목처럼 전시장은 20세기 초 피카소와 브라크로부터 비롯되어 미술판의 지각변동을 몰고온 입체주의 양식이 후발주자인 아시아 나라들의 미술계에 어떻게 전파되고 변모했는지를 짜임새있게 보여준다. ‘탁자 위의 실험-정물’ ‘큐비즘과 모더니티’ ‘큐비즘에 있어서의 신체’ ‘국토-국민의 창생’ 네 주제로 나눠진 전시장에는 중국의 리화, 인도의 수자, 인도네시아의 아마드 사달리, 일본의 요로즈 데쓰고로, 한국의 김흥수, 말레이시아의 아마드 자말, 필리핀의 마난살라, 싱가포르의 청수핑, 스리랑카의 조지 키트, 타이의 솜폿 우파인, 베트남의 타티 등의 주요 작가들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눈에 생소한 이웃 나라들의 40~50년대 입체파 계통 작품들을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입체주의가 중심축이긴 하지만 작업들의 진폭은 넓다. 자국의 근대 미술문화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국제적 유행을 빨리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개인적 욕망과 취향 등이 섞여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회화를 대상 자체로 인식하는 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을 접어놓고 입체파의 다면 시점만 빌어오거나 거기에 자국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나 풍물을 대입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원래 단색조였던 입체파 그림의 이미지를 알록달록한 다채색으로 바꾸거나 전란의 참상 같은 서사적 메시지의 매개체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이미 20년대 레제, 로트 같은 작가들에게 입체주의를 배운 일본, 인도 작가들은 다른 나라 작업과 내용적 편차를 보이기도 한다. 김인혜 학예사는 “아시아권 큐비즘은 50년대 급속히 유행했다가 60년대 추상표현주의로 급속히 바뀐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과 공통점이 많다”며 “서구 미술사의 도식을 추종했던 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당사국들이 함께 분석하고 도록 등의 자료로 축적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19일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아시아 20세기 미술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린다. (02)2022-0613.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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