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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역사를 업은 현대미술 전시들 호기심은 끌지만…

등록 2017-09-05 18:30수정 2017-09-05 19:48

초가을 미술판에 역사를 배경 삼은 현대작품 전시들 이어져
옛 일본군 비행장 격납고에 작품무대 꾸민 제주비엔날레
망국의 비운 깃든 덕수궁 전각에 펼친 ‘야외프로젝트’전
상당수 급조하거나 단순하고 층위 얕은 콘텐츠 눈에 걸려
제주 모슬포 알뜨르 옛 일본군 비행장 격납고에 설치된 전종철 작가의 설치작품 <경계선 사이에서>. 격납고 들머리에 철망을 씌워 바깥의 역사적 풍경을 조망하게 했다.
제주 모슬포 알뜨르 옛 일본군 비행장 격납고에 설치된 전종철 작가의 설치작품 <경계선 사이에서>. 격납고 들머리에 철망을 씌워 바깥의 역사적 풍경을 조망하게 했다.
소재 고갈로 고심하는 요즘 현대미술가들에게는 역사가 돌파구로 주목받는다. 영감 주는 이야기들로 풍성한 역사유산을 소재나 배경으로 삼는 것이다. 5월 베네치아 비엔날레 개막에 즈음해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시내 전시관 2곳에서 벌인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들’전이 대표적이다. 동서양 신화, 역사를 잡탕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해저에 가짜 신상 등을 가라앉혔다가 다시 끌어올려 선보인 전시는 큰 화제를 뿌렸다.

초가을 국내 미술판에도 역사를 재활용한 전시가 잇따라 등장했다. 1일 ‘투어리즘’을 주제로 개막한 1회 제주 비엔날레(12월3일까지)의 알뜨르 옛 비행장 미술프로젝트와, 같은 날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11월26일까지)다. 모두 근대 민족수난기 상처가 남은 역사현장을 무대로 작가가 난장을 펼쳐 놓았다.

알뜨르 프로젝트는 비행장 주변의 비장한 역사적 풍광이 압도한다. 한라산과 삼방산, 모슬포 포구가 멀리 보이는 비행장 터는 1930년대 중일전쟁 당시 중국으로 육상공격기가 발진했고, 1945년 일본 본토 결전용 전투기가 대기했던 곳. 흩어진 10여기 격납고 건물과 주위의 검은빛 흙밭 자체가 장대한 설치작품에 가깝다. 대나무 살을 엮어 파랑새를 손에 든 여인의 거대한 상을 만든 최평곤 작가의 <파랑새>가 멀리 삼방산과 맞물린 조망을 연출하고, 7년 전 일본군 전투기를 철골조형물로 본떠 만든 박경훈·강문석 작가의 영구설치물 <제로센>, 격납고 입구에 철망을 쳐서 안에서 바깥의 역사적 풍경을 관조하게 한 전종철 작가의 작품 등이 눈에 들어온다. 1년 사이 뚝딱 만든 제주 비엔날레는 관광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성찰하자는 ‘투어리즘’ 주제를 내걸었지만, 역사유산의 무게감이 가득한 알뜨르의 풍경과 제주도립미술관 등의 실내 전시들은 맥락이 다르다. 한라산 풍경 60여점을 한꺼번에 내건 ‘한라살롱’, 근대기 조선의 관광유산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전, 키치화한 서구 관광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업들이 뒤섞여 관광유산 홍보전인지, 최근 세계적 이슈로 부각된 떼거리 관광의 문제점을 성찰하는 자리인지 종잡기 어렵다. 야외 미술 투어를 중심으로 섬의 역사문화유산에 얽힌 다채로운 흔적들을 감상하길 권한다.

덕수궁 중화전 행각에서 상영중인 장민승·양방언 작가의 슬라이드 영상작품 <온돌야화>의 일부분. 한국 근대기 풍경 사진들 속에 나오는 인물과 건물의 세부를 유령처럼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 눈길을 붙잡는다.
덕수궁 중화전 행각에서 상영중인 장민승·양방언 작가의 슬라이드 영상작품 <온돌야화>의 일부분. 한국 근대기 풍경 사진들 속에 나오는 인물과 건물의 세부를 유령처럼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 눈길을 붙잡는다.
‘덕수궁 프로젝트’는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망국의 비운을 맞은 고종의 거처 덕수궁의 전각들과 통로에 차려졌다. 작가 9명이 영상과 발광 설치작품, 사진, 사운드 아트를 배치해 역사현장을 현대미술로 재조명하려 했다. 돋보이는 작업은 중화전 행각에서 상영중인 장민승·양방언 작가의 슬라이드 영상작품 <온돌야화>다. 근대기 풍경 사진들 속에 나오는 인물과 건물의 세부를 역사의 유령처럼 클로즈업하면서 바람 소리가 섞인 음향효과를 가미한 연출 기법이 눈길을 붙잡는다. 고종 황제와 고명딸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각기 다른 구도의 네가지 인물사진으로 담거나(정연두), 고종의 서재 덕홍전 안에 빛을 발하는 아크릴 책 모형을 설치하고(강애란), 춤꾼들이 궁 뜨락을 떠도는 꿈결 같은 장면들로 고종의 꿈을 캐는(오재우 작가) 작업들도 있다. 하지만 작품들 상당수가 시각적 효과 말고는 콘텐츠가 단순하고 의미의 층위가 얕아 보인다. 근대사가 투영된 공간에 대한 창의적 상상보다 전시 자체의 의미에만 틀을 끼워 맞춘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제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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