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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연극 대사처럼

등록 2017-09-13 19:59수정 2017-09-13 21:14

24일까지 서촌공간 서로에서
최은영·김금희·백수린 소설
담담한 목소리로 낭독 공연

문학과 연극의 거리 좁히는
‘활자의 무대화’ 새 경험
공연 뒤엔 작가와 대화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촌공간 서로’에서 최근 주목받는 작가인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백수린의 <참담한 빛> 낭독 공연 ‘2017 서로낭독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쇼코의 미소>의 한 장면. 서촌공간 서로 제공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촌공간 서로’에서 최근 주목받는 작가인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백수린의 <참담한 빛> 낭독 공연 ‘2017 서로낭독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쇼코의 미소>의 한 장면. 서촌공간 서로 제공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서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했다.”

무대 가운데로 조명이 들어오자 두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최은영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들려 있었다. 천천히 책을 펼친 그들은 표제작 <쇼코의 미소>를 조곤조곤 읊기 시작했다. 작품은 고교 시절 자매결연으로 알게 된 한국인 소유와 일본인 쇼코의 십여년 인연을 다룬 것으로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는 소설 속 문장으로 설명하면, 두 사람의 연애 같은 우정을 다룬 중편소설이다.

소설을 무대로 옮긴 8일 낭독공연에서 한 배우는 화자인 소유를 맡고, 다른 배우는 쇼코를 맡았다. 소설 전편을 읽는 공연은 80분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소설이 그렇듯, 공연은 소란스럽지 않게 시종일관 잠연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마치 주인공의 일기장을 보여주듯 담담하게 흘러갈 뿐이다. 조금은 싱겁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담담함에 매료되고 말았다”는 소설가 하성란의 단평을 이 공연의 평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테다.

이번 공연은 서울 경복궁 옆 옥인동에 위치한 ‘서촌공간 서로’에서 ‘2017 서로낭독회’의 첫 무대로 기획한 것이다. 기획에 참여한 극작가 정진세는 “문학장과 연극장은 서로 거리가 가까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무 멀다”며 “그 간극을 좁히려고 이번 시리즈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획의도 아래 동시대 작가 작품 여러 편이 물망에 올랐다. 그중 최종적으로 선택된 작품은 최은영의 중편 <쇼코의 미소>와 김금희의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 그리고 백수린의 단편 <참담한 빛>, 총 세 편이다.

<쇼코의 미소>에 이어 14일부터 사흘간 무대에 오를 작품은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다. 투박하게나마 옮기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한직으로 좌천된 중년 남성 필용이 어느 날 우연히 본 공연 포스터에서 16년 전 사랑했던 후배 양희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나서는 이야기. 첫사랑을 찾아 16년을 방황한 남자의 극진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농담처럼 시작해 농담처럼 끝나버린, 그러나 매순간이 진담인 사랑 이야기다.

21일부터 사흘간 공연되는 <참담한 빛>은 백수린의 소설로, 세계적 명성의 영화감독을 동행취재하게 된 잡지기자 정호의 이야기다. 애초 계약과 달리 내한 일정 내내 두문불출하며 인터뷰를 거절했던 감독은 출국을 앞두고서야 정호의 인터뷰를 수락한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인터뷰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대화다운 대화는 없지만, 순간순간 정호의 뇌리에 스치는 단상들은 소설의 다른 축을 구성한다.

이번에 선정된 세 작품의 작가는 모두 30대 중후반의 여성 작가로, 특히 올해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고 한국 문단을 이끌어 나갈 이들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무엇보다 세 작품은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사건이 일으킨, 소소하지만은 않은 내면의 일렁임을 그려낸다.

세 편의 연출은 신진 연출가들이 맡았다. 극단 작은신화에서 연출로 활동 중인 김정민(<쇼코의 미소>), 환경조각과 연기를 전공한 서영주(<너무 한낮의 연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인 임성현(<참담한 빛>)이 각 작품의 연출가로 나선다. 연출의 경향에 따라 약간의 퍼포먼스가 더해질 예정이나, 낭독공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듯싶다. 각 연출은 자신의 색을 더하기보다 활자의 무대화에 집중하여, 작가의 의도를 온전하게 전달하는 데 방점을 찍을 예정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는 공연 후 작가와의 대담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 책(書) 읽는 마을(村) 서촌에서 책도 읽고 작가와 한담을 나누는 고즈넉한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싶다.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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