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인디레이블 루비레코드가 인천 중구 관동의 오래된 인천여관을 리모델링해 대안적인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켰다. 1층은 음악감상실과 공연 공간으로, 2층은 전시공간으로 운영하게 된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안병진 피디는 인천을 “거대하고 괴상한 도시”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 그는 인천을 기반으로 하는 라디오 <경인방송>(iFM)에서 피디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 인천은 항구도시, 이민자도시, 근대도시, 공장도시, 이 모두가 뒤섞여 있는 괴상한 도시다. 하지만 그는 이게 인천의 매력이라 말한다.
외지인들에게 인천은 외형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다. 항구도시라고는 하지만 바다 같지 않은 바다가 있고, 공장도시라는 말처럼 뿌연 잿빛 이미지가 강하다. 어딘가 모르게 낡고 거칠어 보이고, 서울과 부산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300만 대도시지만 왠지 서울의 위성도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선 인천을 ‘마계 인천’이라 부른다.
인천을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음악으로 해석한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에 삽입될 인천의 오래되고 아름다운 장소 일러스트. 작가 봉현이 그렸다.
안병진 피디에게도 인천이 마냥 매력적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젊은 시절 그냥 지나쳤던 인천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잘 알지 못했던 황량한 북성포구와 그저 오래됐다고만 생각했던 동인천의 골목, 인천 주변에 있는 작은 섬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품고 있었다.
“우리 세대는 서울로 가고 싶어 한 세대였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이요원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로로 출근하는데 그 기분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1호선을 타고 서울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풍경부터 달려졌다. 왠지 초라한 기분도 들고,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공간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인천만의 가치나 매력을 젊은 친구들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인천에 살지 않는 분들에게도 내가 본 인천만의 매력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음반을 만들었다.”
9와 숫자들, 서사무엘, 딥플로우 앤 던밀스, 갤럭시 익스프레스, 빅베이비드라이버 등이 참여해 인천의 지역성을 음악으로 해석한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
최근 발표한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은 안병진 피디가 기획한 음반이다.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인천의 매력을 음악으로 알리고 싶었다. 역시 인천에서 성장한 인디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와 함께 실무를 맡아 일을 진행했다. 경인방송과 인천시가 제작했지만 관(官)의 느낌이 나지 않게 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앨범에는 9와 숫자들, 서사무엘, 딥플로우
앤 던밀스, 갤럭시 익스프레스, 빅베이비드라이버 등 현재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1차로 공개된 음원은 인천을 소재로 기존에 만들어진 노래를 새롭게 다시 부른 커버(리메이크)곡들이다. 인천을 상징하는 노래인 ‘연안부두’, 인천 배다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오래된 트로트 ‘이별의 인천항’ 등이 로큰롤과 힙합, 아르앤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10월 공개 예정인 2차 음원에는 인천을 노래하는 창작곡이 수록된다. 시민 공모를 받아 채택된 가사를 노래로 만들어 발표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인 만석동을 비롯해 북성포구, 홍예문, 월미도, 자유공원 등 고풍스럽고 독특한 정취를 가진 인천의 공간을 노래로 소개할 예정이다.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이 제작되는 동안 인천 중구 관동3가에선 또 다른 인천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름은 ‘인천여관’,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는 루비레코드 대표 이규영이다. 홍대에선 이미 유명한 인디 레이블 대표인 그는 인천으로 ‘귀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인천 출신인 그는 한때 부평에서 라이브 클럽 ‘루비살롱’을 운영했지만 클럽을 접은 뒤론 줄곧 서울 홍대 지역을 기반으로 레이블을 운영했다.
인천을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음악으로 해석한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에 삽입될 인천의 오래되고 아름다운 장소 일러스트. 작가 봉현이 그렸다.
“나에게 인천은 자기의 가치를 몰라온 도시다. 예를 들어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같은 노래는 다른 도시에선 가질 수 없는 풍경이다. 막상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없애버리고 옆에 있는 서울만 부러워하는 거다. 서울만 따라 하려고 하고. 최근에 주차장 짓겠다고 (근대건축물) 애경사를 철거한 게 대표적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울엘 간 건데 가보니 별게 없어서 다시 동네로 돌아온 거다.(웃음)”
올해는 루비레코드가 10주년 되는 해이다. 10주년 기념으로 무얼 할까 하다가 ‘공간’이 떠올랐다. 루비레코드의 시작이 부평 루비살롱이었으니 10주년을 맞아 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다 만난 곳이 인천시 중구 관동에 위치한 인천여관이다. 이 대표는 일부러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이 건물을 대리운전을 기다리다 운명처럼 만났다.
13일 인천 중구 인천항 인근에 위치한 인천여관 전경. 최근 대안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여관 안에서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왼쪽)와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가 웃음을 짓고 있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건물은 1970년대 활동했던 인기가수 이숙이 소유했던 곳이다. 실제 여관이었던 이 건물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며 여인숙으로 운영되다 최근에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곳이다. 이 대표는 건물을 인수해 건축재생공방의 이의중 대표와 새롭게 리모델링해 꾸몄다. 일본에서 재생건축을 공부한 이의중 대표는 기본 원형을 최대한 지키면서 쓸 수 있는 건물을 만들려는 취지대로 2층의 방과 화장실은 그대로 남겼다.
3층 건물인 이곳에서 1층은 음악감상실과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2층은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전시도 인천·부평의 음악 역사를 주제로 하는 ‘비욘드 레코드’전이 예정되어 있다.
13일 인천 중구 인천항 인근에 위치한 인천여관 내부.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가 최근 이 여관을 대안문화공간으로 개조했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어떻게 운영해야겠다는 계획은 없다. 내가 계획대로 하겠다고 해도 그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다.(웃음) 일단은 좀 비워두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음악 쪽이다 보니까 알아서 엮일 거다. 간단한 어쿠스틱 라이브 공연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 2층에는 그대로 방들을 남겨두었는데 그곳에선 전시, 크게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10월에는 인천여관과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이 결합한 행사도 열린다. 여섯번째 행사를 맞는 ‘사운드 바운드 인(in) 개항장’이다. 지금까지 ‘인 부평’, ‘인 신포’ 등의 배경이 붙었는데 이번엔 개항장이다. 10월28일과 29일 양일간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공연이 열린다. <인천?사운드 오브 인천>에 참여한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장혁, 빛과 소음, 이권형 등과 이정선, 조덕배, 조규찬, 몽니, 소란, 로다운30, 말로, 랄라스윗, 이정아 등 장르와 연령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가들이 무대에 오른다.
본부 격인 인천여관을 비롯해 100년이 넘은 근대 건축물 안에서 30년 이상 재즈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버텀라인’, 오랜 시간 신포동을 지켜온 엘피(LP) 카페 ‘흐르는 물’, 1920년대 지어진 개항장 얼음창고를 재생건축한 ‘아카이브 카페 빙고’, 옛 돌체소극장(1978)을 리모델링하여 2009년 재개관한 ‘플레이 캠퍼스’ 등 각 공연이 열리는 공간을 찾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의 (02)3144-4712.
김학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