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손님 연극무대 올리는 윤광진 교수
“전쟁 희생자 우리 모두들 위한 진혼굿”
우리 시대의 큰 작가 황석영의 〈손님〉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하고 연출한 윤광진(51·용인대 연극학과) 교수를 지난 18일 만났다.
“한국전쟁은 우리 부모 세대나, 아래 세대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표현처럼 ‘원체험’ 아니겠어요? 강정구 교수 발언이나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갈등이 모두 한국전쟁에서 비롯됩니다. 그러한 대립의 근원적 모습을 〈손님〉에서 찾을 수 있었죠.”
한국전쟁은 좌·우대립의 원체험
‘신천학살사건’ 새롭게 조명·해석
실제 피해 새터민부부 사투리 감수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극의 배경은 한국전쟁, 그 중에서도 ‘신천사건’이다. 12만명의 황해도 신천 군민 가운데 3만5천여명이 ‘학살’됐다는 사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게 된 공산계열이 우익인사들을 무참히 학살하자, 우익들이 이에 반발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한 마을에서 같이 물고기 잡으며 놀던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자행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라이 학살’ 당시 희생된 사람이 500여명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학살사건인 셈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만행’이라고 선전해왔고, 남한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그런데 작가 황씨는 학살이 미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이뤄졌다”고 결론 내렸다. 소설에서는 ‘기독교 우파’들에 의한 학살을 주로 다뤘다. “황 선생님의 의도는 결국 남한, 우익 쪽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저는 균형을 맞추고 흥미도 가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익과 기독교 세력 쪽에서 쓴 수기들도 참고했죠. 우익이든 좌익이든 모두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니까요.” 원작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 좌익에 의한 학살 ‘서부교회 사건’을 주요 장면으로 삽입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익들이 왜 이렇게 복수심에 불탔을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작품의 무게감을 덜기 위해 음향과 ‘시적 전환’이라는 장치가 사용된다. 특히 주인공 류요섭 목사가 형 요한의 아들과, 형수를 만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퇴각하던 여자 인민군 2명이 요섭의 보호를 받다 요한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에서는 “연극적 휴머니티의 따뜻한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윤 교수는 귀띔했다. 이 작품은 출연 배우가 21명, 등장인물이 50여명이나 되는 대작이다. 지난 여름부터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았다. 1994년 윤 교수가 연출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로 인연을 맺은 극단 연우무대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무대, 의상, 음향 등 스태프들도 국내 정상급입니다.” 황해도 사투리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탈북 새터민 교육시설인 ‘하나원’을 갓 나온 60대 새터민 부부의 지도와 감수를 받기도 했다. 이들 탈북자 부부 역시 신천사건 당시 가족들을 잃었다고 한다.
“이 연극은 전쟁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진혼굿’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으로는 전쟁 후 태어나 50여년을 이 사회에서 살아 온 우리의 상처이고 위안입니다. 지금까지 연극이나 영화에서 한국전쟁은 너무 동화 같은 느낌으로 다뤄졌어요. 앞으로의 제 작품 활동은 지나온 우리들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작품을 공연하는 데 바쳐야할 것 같습니다.” 12월 2일~11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762-0010.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신천학살사건’ 새롭게 조명·해석
실제 피해 새터민부부 사투리 감수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극의 배경은 한국전쟁, 그 중에서도 ‘신천사건’이다. 12만명의 황해도 신천 군민 가운데 3만5천여명이 ‘학살’됐다는 사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게 된 공산계열이 우익인사들을 무참히 학살하자, 우익들이 이에 반발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한 마을에서 같이 물고기 잡으며 놀던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자행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라이 학살’ 당시 희생된 사람이 500여명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학살사건인 셈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만행’이라고 선전해왔고, 남한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그런데 작가 황씨는 학살이 미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이뤄졌다”고 결론 내렸다. 소설에서는 ‘기독교 우파’들에 의한 학살을 주로 다뤘다. “황 선생님의 의도는 결국 남한, 우익 쪽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저는 균형을 맞추고 흥미도 가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익과 기독교 세력 쪽에서 쓴 수기들도 참고했죠. 우익이든 좌익이든 모두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니까요.” 원작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 좌익에 의한 학살 ‘서부교회 사건’을 주요 장면으로 삽입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익들이 왜 이렇게 복수심에 불탔을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작품의 무게감을 덜기 위해 음향과 ‘시적 전환’이라는 장치가 사용된다. 특히 주인공 류요섭 목사가 형 요한의 아들과, 형수를 만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퇴각하던 여자 인민군 2명이 요섭의 보호를 받다 요한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에서는 “연극적 휴머니티의 따뜻한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윤 교수는 귀띔했다. 이 작품은 출연 배우가 21명, 등장인물이 50여명이나 되는 대작이다. 지난 여름부터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았다. 1994년 윤 교수가 연출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로 인연을 맺은 극단 연우무대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무대, 의상, 음향 등 스태프들도 국내 정상급입니다.” 황해도 사투리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탈북 새터민 교육시설인 ‘하나원’을 갓 나온 60대 새터민 부부의 지도와 감수를 받기도 했다. 이들 탈북자 부부 역시 신천사건 당시 가족들을 잃었다고 한다.
“이 연극은 전쟁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진혼굿’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으로는 전쟁 후 태어나 50여년을 이 사회에서 살아 온 우리의 상처이고 위안입니다. 지금까지 연극이나 영화에서 한국전쟁은 너무 동화 같은 느낌으로 다뤄졌어요. 앞으로의 제 작품 활동은 지나온 우리들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작품을 공연하는 데 바쳐야할 것 같습니다.” 12월 2일~11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762-0010.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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