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ance 2017’개막작으로 공연되는 러셀 말리펀트 컴퍼니의 ’숨기다/드러내다’. SIDance 사무국 제공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전부 새롭다. 10~11월 시대의 감성을 입은 무용 공연들이 한국 무대에 쏟아진다.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모던발레로 재탄생한 고전 속 인물부터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현대무용 공연까지, 가을을 수놓을 생동감 넘치는 몸짓들이다.
모던발레 <카르멘>과 <안나 카레리나>
<카르멘>과 <안나 카레니나>는 우리에게 각각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로 익숙한 이름이다. 명작 속 두 여인이 모던발레로 다시 태어난다.
스페인 국립 무용단이 내한해 선보일 <카르멘>은 스웨덴 출신 안무가 요한 잉에르가 창작해 2015년에 초연했다. 스페인 국립 무용단(1979년 창단)은 2010년, 20년간 단체를 이끌던 예술감독 나초 두아토가 퇴임하자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 호세 카를로스 마르티네스를 새 예술감독으로 맞이하며 일종의 과도기를 겪었다. 마르티네스는 새로운 레퍼토리 창출을 위해 유럽 무대에서 단연 주목받고 있는 요한 잉에르(1967~)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잉에르는 독창적이고 세련된 몸짓의 <카르멘>을 탄생시켰다.
11월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스페인국립무용단의 모던발레 <카르멘>. 엘지아트센터 제공
붉은 드레스의 카르멘은 오페라보다 더욱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그녀를 사랑하는 돈 호세의 감정은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무엇보다 무대와 객석을 잇는 존재인 소년 캐릭터가 추가되어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을 통해 비극적 사랑을 바라보도록 연출했다. 삼각형 유리기둥 아홉 개를 활용하는 무대가 무용수들의 춤을 다채로운 질감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지난해 요한 잉에르에게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안무가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스페인 국립 무용단에 솔로 단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한국인 무용수 박예지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11월9~12일 엘지아트센터)
취리히 발레단의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푸크가 안무한 <안나 카레니나>는 국립발레단의 공연으로 새 옷을 입는다. 1969년 독일 출생인 슈푸크는 얀 라우어르스의 니드컴퍼니, 아네 테레사 더케이르스마커르 무용단 등 벨기에서 무용수로 활동했던 인물. 2001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안무가로서의 입지를 넓혀왔다. <안나 카레니나>는 2012/2013시즌부터 취리히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슈푸크가 2014년에 첫선을 보인 대규모 발레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리나>. 국립발레단 제공
음악은 예고편에 공개된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작품번호(Op.) 3-2’를 비롯하여 라흐마니노프와 루토스와프스키의 여러 작품으로 채워졌다.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예술감독은 “다양한 스타일의 발레를 한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11월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한편, 꾸준히 사랑받은 발레 두 편도 11월 서울 무대에 오른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네긴>(11월24~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발레단은 <백조의 호수>(11월9~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를 선보인다.
두 개의 무대에서 특별한 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은 수석 무용수 황혜민·엄재용 부부의 은퇴 공연으로 꾸며진다.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입단해 2012년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로미오와 줄리엣> <지젤> 등 전막 발레를 이끌어왔다.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기민이 출연한다.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스테이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서 깊은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의 산하 단체로, 이번 한국 공연은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기민과 빅토리야 테료시키나를 비롯한 무용수 및 스태프진이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발레단과 함께 꾸민다. 2016년 한국 남성 무용수 최초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일컬어지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김기민이 고국에서 5년 만에 선보이는 무대에 벌써부터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축제에서 만나는 현대무용의 최전선
형식에 얽매인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의 자유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의지가 현대무용의 시초다. 안무가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완전히 새로운 몸짓은 관객에게 의미를 찾는 재미를 선사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현대무용수, 아크람 칸과 러셀 말리펀트가 각기 다른 개성의 무대를 선보인다. 아크람 칸은 어린 시절 체득한 인도의 전통무용 카탁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출하는 독특한 예술세계의 소유자로,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바 있다. 제17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폐막작으로 공연될 <언틸 더 라이언스>(10월12~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영감을 얻어 성역할의 구분에 대한 고찰을 드러낸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폐막작 ‘언틸 더 라이언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제공
해부학, 생리학, 생물역학 등을 통한 몸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안무가 러셀 말리펀트는 <숨기다 | 드러내다>(Conceal | Reveal, 10월9~10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를 공연한다. 2015년 초연작으로, 러셀 말리펀트는 이 작품을 통해 ‘육체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17)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0월29일까지 19개국 47개 단체가 참여한 41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재능 있는 안무가의 신작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인 ‘픽업스테이지’를 운영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은 서울 사람의 속성을 그린 ‘경인 京人’(박순호 안무)과 두려운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드러내는 ‘빅 배드 울프’(조슈아 퓨 안무)를 <맨투맨>이라는 제목으로 한 무대에 올린다.(10월13~1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한국적 춤사위와 셰익스피어의 만남
신작 <춘상>을 선보인 국립무용단은 대표 레퍼토리 <묵향>(11월10~12일 국립극장 해오름)을 선보인다. 미니멀한 양식으로 전통에 담긴 세련된 아름다움을 드러낸 무대로,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의 연출가로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서울시무용단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작 무용극으로 선보인다.(11월9~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한국적 춤사위를 바탕으로 파이프오르간과 북의 대합주를 통해 웅장한 무대를 꾸민다.
김호경 객원기자
writerhoh@gmail.com 사진 각 공연 사무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