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무용단 아우 멘츠 댄스시어터의 <그림자 도둑>.
1998년에 시작해 올해 스무 돌을 맞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가 서울에 춤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서울세계무용축제는 현대무용의 조류를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무용축제로 9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올해는 국외 13개국의 17개 단체를 초청했다. 국제 합작 프로그램과 국내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모두 19개국 45개 단체가 참여한다. 그 수만큼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무용 본연의 움직임과 조형미를 강조한 작품부터 무용과 연극의 중간지대에 있는 무용극, 보는 행위에서 추는 행위로의 전환을 꿈꾸는 커뮤니티 댄스까지. 그중 일반 관객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작품 네 편을 일별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스페인의 <그림자 도둑>(22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다. 제목대로 그림자놀이를 이용한 <그림자 도둑>은 한 편의 동화 같은 무용극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그림자놀이다. 작품은 그림자를 이용해 인물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할 뿐만 아니라, 무용수와 그의 그림자 노릇을 하는 무용수가 혼연일체가 된 안무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술 같은 비주얼로 정평이 난 아우 멘츠 댄스시어터의 작품으로, 이야기는 돈에 눈이 먼 남자가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독일 작가 샤미소의 환상소설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가져왔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 소설을 모티브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썼다.
오스트리아의 알렉스 도이팅어·알렉산더 고트파르트의 <기사도는 죽었다>.
오스트리아 팀인 알렉스 도이팅어와 알렉산더 고트파르프의 <기사도는 죽었다>(15일, 시케이엘스테이지)는, 무용은 몸에 착 달라붙는 레오타드나 유니타드를 입고 추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무용수들은 중세 기사복을 입고 등장한다. 날카로운 창으로 찔러도 뚫리지 않을 듯 단단한 철제 기사복에 무거운 철제 투구까지 걸친 무용수들은, 그 육중한 몸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나 중세 기사를 예찬하는 작품은 아니다. 제목처럼 작품은 구시대의 유물인 갑옷(iron)을 벗고, 지금도 여전히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이 아이러니(irony)한 상황마저 벗어던지자고 말한다.
이스라엘에서 온 오피르 유딜레비치는 <중력>(2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선보인다. 2016년 예루살렘 안무대회 우승작인 <중력>은 트램펄린처럼 탄성이 있는 매트 위에서 무용수들이 곡예와 같은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무용수들은 그 위에서 서로 던지고 뛰고 넘어지며, 단단한 매트에서는 불가능한 움직임들을 표현한다. 무용 같기도, 무술 같기도, 혹은 체조 같기도 한 무용수들의 애크러배틱은 그 자체로 시각적 흥미를 유발한다.
스페인 마오 무용단의 <아주 많은>(16일, 서강대학교 메리홀대극장)은 젊은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여타의 공연과 달리 ‘조금 많은’ 연배의 여성 무용수의 솔로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내 스크린으로 비슷한, 혹은 조금 더 많은 연배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무용수보다는 일반인에 가깝다. 이처럼 무용과는 거리가 있을 듯한 이력과 연배의 여성들을 출연시키는 커뮤니티 댄스 공연으로, 마오 무용단의 대표 마리안토니아 올리베르는 작품을 위해 일흔이 넘은 여성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글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세계무용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