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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고공농성 끝났지만…현실은 진행형

등록 2017-10-31 18:36수정 2017-10-31 20:15

-리뷰/연극 ‘말뫼의 눈물’-
쇠락한 울산조선소 배경으로
동료 추락사가 바꾼 노동자 삶 그려
농성 끝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뭘까
“아직도 현장에 복직하지 못한 동지들이 있는데, (농성을 풀고) 내려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지난 7월26일 고공농성을 풀고 땅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대의원 이성호씨와 조직부장 전영수씨는 이튿날인 27일 <한겨레>에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하청 노동기본권 보장’과 ‘블랙리스트 철폐’ 등을 요구하며 교각에 오른 지 107일 만의 일이었다.

조선업의 쇠락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조선소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을 담은 연극 ‘말뫼의 눈물’은 경남 거제 출신인 연출가 김수희씨가 조선소 노동자들을 취재해 만든 결과물로 이들의 아픔과 투쟁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극단 ‘미인’ 제공
조선업의 쇠락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조선소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을 담은 연극 ‘말뫼의 눈물’은 경남 거제 출신인 연출가 김수희씨가 조선소 노동자들을 취재해 만든 결과물로 이들의 아픔과 투쟁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극단 ‘미인’ 제공
마치 이 일을 배경으로 한 듯한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12일까지 상연되는 연극 <말뫼의 눈물>이다. 제목 ‘말뫼의 눈물’은 울산 현대중공업에 설치된 1500t급 항만용 대형 크레인을 말한다. 2002년 현대중공업은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에서 이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말뫼의 눈물’이라는 별명은 당시 크레인의 해체와 운반을 지켜본 말뫼의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말뫼의 눈물은 조선업의 몰락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연극 <말뫼의 눈물>은 크레인이 울산으로 옮겨온 이후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 조선소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노동자와 주민들이다. 대를 이어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부자, 농사일과 뱃일을 하다 비정규직으로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섬 토박이, 인력회사 사장, 그리고 하숙집 주인과 그의 딸. 정규직인 아비는 비정규직 아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게 꿈이고, 비정규직 섬 토박이는 돈을 모아 인근에 작은 빌라를 마련하는 게 꿈이다. 이처럼 작품은 그들의 다양한 욕망과 거기서 빚어지는 갈등을 보여주나, 소박한 희망으로 고된 삶을 견디는 그들의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전반부다.

작품은 동료 노동자의 추락사로 변곡점을 찍는다. 이에 분개한 비정규직 아들이 노동3권 보장과 비정규직 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기 위해 골리앗 크레인에 오른다. 그리고 외로운 고공농성에 돌입한다. 그의 요구는 관철될 수 있을까? 성패보다 흥미로운 건,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이후를 말한다는 사실에 있다. 농성을 풀고 내려온 그에게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의 가족, 동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제목처럼 작품은 현재 이곳에서 진행 중인 조선업의 쇠락으로 마무리된다.

조선업의 쇠락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조선소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을 담은 연극 ‘말뫼의 눈물’. 극단 ‘미인’ 제공
조선업의 쇠락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조선소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을 담은 연극 ‘말뫼의 눈물’. 극단 ‘미인’ 제공
상상만으로는 불가능한 작품을 쓴 이는 극단 ‘미인’의 김수희 연출가다. “어렸을 때 거제도에 살았어요. 부모님도 거기서 나고 자라셨고요. 일가친척, 친구분들 중에 여전히 조선소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3년 전부터 작품을 구상한 그는 실제로 조선소 노동자들을 만나 취재를 했다. 그들과 했던 인터뷰는 작품의 현실성을 더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엔 일제강점기인 1931년 을밀대에 올라 국내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였던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물론 공연을 보면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떠오르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해, 그를 위해 희망버스에 올랐던 이들에게 <말뫼의 눈물>은 다층적인 의미를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글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사진 극단 ‘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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