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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5천원에 누리는 2시간의 눈호강

등록 2017-11-02 18:14수정 2017-11-02 21:15

[리뷰] 국립발레단 ‘안나 카레리나’
발레 <안나 카레리나>는 남녀 주인공에 집중하면서도 군무를 적절히 배치해 복잡한 서사를 효과적으로 집약해 보여준다.
발레 <안나 카레리나>는 남녀 주인공에 집중하면서도 군무를 적절히 배치해 복잡한 서사를 효과적으로 집약해 보여준다.
러시아의 거장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발레로 변신하면 어떻게 될까?

1700쪽 넘는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 내외의 발레로, 그것도 대사도 없이 춤만으로 구성해야 하는 발레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는가는 많은 안무가들에게 매력적인 도전이었다. 이미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에서 1971년 로디온 셰드린의 음악에 마이야 플리세츠카야가 주연한 작품을 내놓았고, 국내에서도 공연된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버전도 존재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150명의 등장인물을 놓고 심도 깊은 인물묘사와 다양한 견해와 시선이 중첩된다. 원작 소설은 불륜 스캔들에 휩싸인 귀부인의 자살로 마감되는 이야기지만 막상 읽다 보면 단순한 치정극을 넘어 사회제도, 계급, 종교, 인간의 본질 등 다양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성공적인 발레 작품들은 단순한 서사를 어떻게 풍부하게 처리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느냐를 주된 흥행 전술로 사용해왔다. 그런 차원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그 대척점에 있는 발레 작품으로 성공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조건을 지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현재 국립발레단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발레 <안나 카레리나>는 미니멀한 무대로 세련미를 더한다.
발레 <안나 카레리나>는 미니멀한 무대로 세련미를 더한다.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개된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는 취리히발레단의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푸크가 2014년 초연한 작품인데, 위에서 언급한 버전의 <안나 카레니나>들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안무가는 원작이 가진 방대한 내용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작품의 기본 뼈대는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 남녀 주인공 안나와 브론스키를 기둥으로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키티, 레빈 커플 등 주요 인물은 솔리스트로, 분위기와 상황은 군무로 적절하게 조절한다. 두 남녀 주인공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면 귀부인의 스캔들로만 보일 염려가 있으므로 이를 상쇄시키는 방법으로 비중있는 솔리스트를 적절하게 배치해 원작이 지닌 내용의 풍부함을 극대화했다.

이 작품에 세련미를 더하는 건 무대 미술과 전개 방식이었다. 무대는 미니멀했다. 검은 기둥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3개의 이동식 철제 구조물과 상황마다 사람들이 등장해 수동으로 쳐지는 흰색 커튼 위로 비치는 영상은 작품의 상황과 배경을 친절하게 암시해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출연진이 직접 무대 소품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그 상황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이질감을 찾을 수 없었다. 안무가는 서사의 전개에서 소품과 상황전환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상류층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등장한 화려한 의상도 좋은 볼거리다. 이 의상들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극대화시켜주면서도 조화로운 색감을 써서 극의 세련미를 높여주고 있다. 음악 역시 효과적이었다. 러시아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폴란드 음악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음악을 적절하게 사용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까지 안무된 발레 <안나 카레니나> 가운데 상당히 성공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다. 볼쇼이 버전보다 현대적이고 에이프만의 버전보다 밝다.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 선정에서 긍정적 사례로 꼽고 싶다. 더욱이 이런 양질의 발레 공연 표값이 5천원부터 시작된다. 국립공공예술기관이 좋은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싼값에 제공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잘 실천한 셈인데, 덕분에 검증되지 않은 국내 초연인데도 매진을 기록했다. 5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은 평창문화올림픽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올림픽 개막식 다음날인 내년 2월10일에 다시 만날 수 있다.

글 박성혜 무용평론가, 사진 국립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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