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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관중 아유 쓴약 삼아 휠휠 날아오르다

등록 2005-11-23 17:59수정 2005-11-24 16:36

노승림의무대X파일 -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서양의 음악가가 동양을 소재로 작곡한 최초의 오페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대작들이 흔히 겪어왔던 것처럼, 이 오페라의 초연 실적 또한 절대로 만만치 않았다.

1904년 2월27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벌어진 초연에서, 관중의 야유는 1막 시작부터 터져 나왔다. 2층 관람석에서는 한 관객이 “저게 무슨 신작이야, <라 보엠>우려 먹기 아니냐!”고 고함쳤다. 2막에서는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스토르키오의 기모노가 바람 때문에 부풀어오르자 “스토르키오가 토스카니니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인신모독성 발언까지 들려왔다. 관중의 야유는 커질 대로 커져 이중창 내지 아리아로 이루어진 2막에 이르러서는 무대 위의 노래가 전혀 들리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소동이 푸치니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본래 관객들과 친하지 못해 비난과 야유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온 여느 선구자적인 음악가들과는 달리 푸치니는 대중친화적인 작곡가였다. 자신의 음악성과 존재 가치를 대중들의 인기로 가늠하던 그는 관객들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실험적인 시도보다는 그들에게 듣기 좋은 낭만적인 선율을 자주 활용해왔다. <마농 레스코>의 성공은 <라 보엠> <토스카>로 이어졌으며 이 작품들을 통해 푸치니는 푸짐한 명성과 함께 매년 15만 달러에 상당하는 수입을 벌어들였다.

<나비부인>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푸치니의 명성에 익숙한 관객들은 <나비부인>의 초연티켓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배역도 최상이었으며 멀리 떨어진 로마에서도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공연을 보러 왔다. 입장료 수입은 라 스칼라 극장 초연 사상 신기록을 갱신했다. 소심한 푸치니조차 이러한 반응에 자신감을 얻고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상황은 위에 묘사한 대로 참담하리만큼 대실패였다.

푸치니는 소심했지만 자부심이 대단한 음악가였다. 이런 정도의 소동까지 겪었다면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작품 상연을 접게 마련이다. 그러나 푸치니는 행동을 달리 했다. 그는 선금으로 받은 2만 리라를 극장에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로마에서 온 친구에게 “<나비부인>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다”라고 장담하며 복수심에 불타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지루하다고 여겨진 제2막을 나누는 것 이외에 여러 아리아들을 더욱 아름답고 따스하게 다듬었다.

같은 해 5월 브레시아에서 열린 <나비부인>의 두 번째 상연은 과거의 <라 보엠> <토스카>를 웃도는 갈채를 받아냈다. ‘어떤 갠 날’을 비롯하여 ‘사랑의 이중창’ ‘편지의 이중창’ ‘꽃의 이중창’ 등 온갖 이중창들이 부를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극이 진행되는 도중임에도 앙코르를 받았다. 오페라가 끝나고 푸치니는 무려 10번의 커튼콜에 시달려야 했다.

시련을 겪은 작품은 더욱 애착이 가는 법이다. “관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라 보엠>이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나비부인>이다”라고, 작곡가는 생전에 <나비부인>에 대한 애착을 유감없이 표시했다.

노승림/공연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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