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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강물에 붓을 씻어 섬진강에 깃든 ‘묵자 사상’ 그리죠”

등록 2018-02-12 19:15수정 2018-02-12 21:18

【짬】 전북 순창 정착한 한국화가 송만규 작가

한국묵자연구회 회장을 맡은 ‘섬진강 화가’ 송만규 작가. 그는 연구회를 “주로 묵자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동아리”라고 소개했다.
한국묵자연구회 회장을 맡은 ‘섬진강 화가’ 송만규 작가. 그는 연구회를 “주로 묵자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동아리”라고 소개했다.

한국화가인 송만규(63) 작가는 2002년부터 전북 순창군 섬진강 상류 지역에 작업실을 마련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섬진강 화가’라고 한다. “늘 섬진강을 아침저녁으로 거닐며 섬진강물에 붓을 빤다고 할까요. (섬진강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정도죠.”

새달 14~20일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섬진8경’을 주제로 개인전도 연다. 그가 직접 뽑은 ‘섬진8경’의 4계를 그린 32점을 선보인다. 전북 전주 집에 머물고 있는 화가를 10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최근 한국묵자연구회(이하 연구회) 회장을 맡았다. 2010년 대전에서 연구회가 출범할 때 명칭은 한국묵자학회였다. “학회란 말이 부담스러워 연구회로 개칭했어요. 창립 때 80여명이었던 회원이 지금은 100여명입니다. 대전과 전주, 서울에서 공부 모임을 꾸리고 있죠.”

연구회는 중국 고대 사상가인 묵자 사상의 대중화에 힘써온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 고전 공부를 해온 수강생들이 주축이다. 그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면서 삶의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더 이상 추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문학 공부를 결심하고 대전에 머물고 있던 기세춘 선생에게 뜻을 전했다. “기 선생은 민주화운동 과정 속에서 이름을 알고 있었어요. 기 선생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전주로 와서 강의를 하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학당을 꾸려 2~3년 공부한 뒤 연구회 출범 때 자연스레 합류했단다.

1980년대 ‘사회변혁’ 민중미술 앞장
문민정부 들어 조직해체 ‘공황상태’

“포근한 섬진강 끌려 25년째 작업”
새달 서울·전주에서 ‘섬진 8경’ 개인전

기세춘 선생과 10년째 고전 공부
최근 한국묵자연구회 회장도 맡아

“전주 학당의 학동은 20여명입니다. 매주 목요일 만나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죠. 강의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합니다. 술집에서 건배할 때는 먼저 ‘묵자’라고 하면 대중들이 ‘노자’라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놀고 먹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한잔 술을 마시더라도 신변잡기를 안주 삼기보다는 (고전의) 짧은 글귀라도 하나 꺼내놓고 그 얘기를 풀면서 시대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게 술도 맛있고 뒤탈도 없지요. 그게 인문학 정신입니다.”

왕시루봉 여름(송만규 작)
왕시루봉 여름(송만규 작)
화가의 일과 고전 공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물었다. “인문학 공부로 올바른 시선을 가졌을 때 자연도 내 눈과 가슴에 꽂힙니다.” 덧붙였다. “1993년 섬진강을 처음 찾았을 때 계단식 논에서 흐르던 물 한방울이 논두렁 사이로 흘러 조그만 물줄기가 되는 걸 보았어요. 물줄기는 아래로 내려가며 도랑을 이루고 강물이 되고 계곡이 되죠. 이걸 보면서 당시는 인간 사회의 탄탄한 조직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낮은 곳에 처한 예수의 사랑을 떠올렸어요. 묵자를 만난 뒤엔 이게 바로 ‘묵자 정신’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묵자 사상의 핵심인 겸애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대동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자연으로서 강물이 그것 같았어요. 묵자에서 배운 것과 자연에서 배운 것이 비슷했어요. 강물에 대한 애착이 더 생겼죠. 화가로서 강물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죠.”

그는 만학도다. 고교 동기보다 6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재수 시절 기독교 인권운동 단체를 만나 4~5년 인권운동을 한 뒤 원광대 미술대에 진학했다. 1980년대 그는 사회변혁에 복무하는 민중미술가였다. 전국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중앙위원과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민미련) 의장을 지냈다. 민미련 회원들이 집단창작한 폭 77m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북에 보냈다는 이유로 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이 걸개그림의 갑오농민전쟁 부분을 맡아 동료 10여명과 함께 그렸다.

문민정부가 들어설 즈음 민미련은 해체를 결의했다. “(현장이 아니라) 개인 창작 중심으로 활동하자는 결의였죠. 공황 상태에 빠졌어요.” 이때 섬진강을 만났다. 창작자로서 섬진강의 매력은? “풍광이죠. 섬진강은 강폭이 거대하지 않아요. 유속이나 물줄기도 그래요. 하지만 강은 그 안의 바위나 억새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까지 포근하게 감싸주지요.”

하동 송림 여름(송만규 작)
하동 송림 여름(송만규 작)

‘섬진8경’ 전시는 서울에 이어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3월23일~4월1일)에서도 열린다. “20년 이상 그려온 섬진강의 가장 매력있는 특징을 잡아낸 그림이죠. 내가 섬진강에서 받은 혜택을 강에 돌려주고 싶었어요.” 8경 중 한 곳만 소개해달라고 했다. “지리산 왕시루봉(1212m)에서 본 섬진강입니다. 구례 쪽에서 새벽 2~3시께 등반을 시작해 봉우리에 오릅니다. 강물은 해 뜨기 전에 봐야 제대로 보이죠. 이곳에서 섬진강 물줄기를 가장 멀리 길게 볼 수 있어요. 현대사에서 피로 물든 곳이기도 하죠.”

‘왜 섬진강만 그리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이렇게 답한단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지구의 반쪽만 본 것이죠. 자연과 더불어 바라보고 느낀 시선으로 나머지 반쪽을 채울 수 있어요. 이 전시로 섬진강 작업은 일단 매듭지으려고 해요. 하지만 섬진강은 계속 그릴 겁니다. 인간을 그리워하면서요.”

새벽강(송만규 작)
새벽강(송만규 작)
연구회 회장 임기는 2년이다. 계획은? “전문 학술단체는 아니지만 학술위를 확대 강화하고 싶어요. 묵자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기 위해선 묵자 이해가 깊어야겠지요. 전국의 인문학 공부 모임들이 함께 하는 토론 놀이 마당도 열고 싶어요.” 묵자 정신으로 사회 현상을 꿰뚫어 보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묵자 시대에도 핵만 없었지 늘 싸웠어요. 묵자는 반전평화 의지가 강했어요. 연구회에도 평화론자이면서 통일 의지가 강한 분들이 많아요.”

강성만 선임기자sungman@hani.co.kr, 사진 송만규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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