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60년, 소년의 눈으로 담은 인간공동체의 풍경

등록 2018-03-13 05:02수정 2018-03-13 09:21

다큐사진의 거장 구보타 히로지 한국 첫 개인전
세계적인 보도사진 그룹 매그넘 아시아 첫 멤버
지난 50여년간 찍은 세계의 인간군상, 문명, 자연 풍경들
다이트랜스퍼 기법으로 담은 묵직한 톤의 컬러사진 눈길
학고재갤러리 신관 전시장에서 출품작 앞에 선 구보타 히로지 작가. 이 작품은 1978년 미얀마 불교성지 짜이티요의 황금바위를 찍은 것으로, 흑백에서 컬러사진으로 작가가 작업 방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작가는 “휴머니티는 내가 사진가로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버거운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무엇’을 찍는다”고 말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학고재갤러리 신관 전시장에서 출품작 앞에 선 구보타 히로지 작가. 이 작품은 1978년 미얀마 불교성지 짜이티요의 황금바위를 찍은 것으로, 흑백에서 컬러사진으로 작가가 작업 방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작가는 “휴머니티는 내가 사진가로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버거운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무엇’을 찍는다”고 말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전쟁을 겪은 철부지 소년의 시선과 마음으로 평생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은 지 얼추 60년, 머리 하얗게 센 일본 작가는 세계적인 거장이 됐다. 하지만, 갈수록 단순함을 추구해왔다는 그의 사진들은 소년 시절 시선을 잊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직후 죽어 널브러진 사람들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참상을 본 충격은 지금도 눈과 머릿속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주검이나 선혈 낭자한 전쟁과 분쟁의 장면들은 절대 담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휴머니즘 가득한 인간과 문명, 자연의 다큐사진 작업들로 일가를 이룬 일본 사진작가 구보타 히로지(79). 그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털어놓은 작업 밑바닥 이야기들은 작품 곳곳에 정직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런 구보타의 사진들을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지난 10일 개막한 ‘구보타 히로지, 아시아를 사랑한 매그넘 작가’전. 작가의 59년 작업들을 망라한 대규모 전시로 한국에 차려진 첫 회고전이다.

구보타는 1965년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 세계적인 보도사진가 그룹 ‘매그넘’의 멤버가 됐고, 아시아권 다큐사진에 관한 한 최고의 거장으로 꼽힌다. <한겨레>와 손잡고 백두산, 금강산 등 북한의 명산과 풍경을 소개한 <북녘의 산하> 사진집을 1988년 펴냈고, 2008년에는 매그넘 작가 20명의 한국 촬영 작업을 담은 ‘매그넘 코리아’ 프로젝트전의 책임기획도 맡으면서 한국 애호가들에게도 친숙하다.

와세다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구보타는 60년대 초 학생운동을 하다 운동 현장을 취재하던 일본 사진가 하마야 히로시의 조수로 일했다. 엘리엇 어윗 등 당시 일본을 찾은 매그넘 거장들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다큐사진 작업에 몸담게 된다. 전시는 이렇게 시작된 구보타의 초창기 미국에서의 작업부터 국내에 잘 알려진 남북한 풍경 작업과 2003년 고국 일본의 풍광을 찍은 작업들까지 109점의 주요 작품들을 6개 영역으로 나눠 보여준다. 특히 미국의 반전, 흑백차별 철폐 등의 민권운동을 담은 60년대 초중반 작업들과 컬러사진 작업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70년대 중반 동남아 연작들, 매그넘 역사의 금자탑으로 남은 70년대 후반~80년대 초 개혁개방기 중국의 격변하는 사회상을 담은 연작들은 국내에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수작들이다.

1982년 작 <황제 무덤의 수호자-중국 허난성 공현>.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1982년 작 <황제 무덤의 수호자-중국 허난성 공현>.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자연, 도시, 문명, 인간들의 담담한 관찰로 요약되는 그의 작품들은 시대 앞에서 부대끼는 인간과 문명의 진실을 중립적 시선으로 포착한다. 미얀마의 번쩍거리는 황금바위 뒤에 웅크린 승려들의 왜소한 군상과 1982년 중국 허난성 궁셴(공현)의 고대 능묘를 지키는 거대 수호석상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농부 한 사람, 티베트 사원의 험상궂은 천왕상 앞을 지나가는 불자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 등은 과거와 현재, 자연과 문명 속에서 끊임없이 교감하며 존재를 확장시켜나가는 인간공동체에 대한 인상적인 소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장기인 클로즈업된 군상 사진들, 이를테면 60년대 초 찍은 일본 홋카이도의 설원 속 아이들이나 동남아의 축제 종교의식 장면 등은 누구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그들의 행동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하는 비범한 재능을 보여준다.

1978년 작 <평양, 북한>.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1978년 작 <평양, 북한>.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1978년 작 <만달레이 언덕 앞 소년과 소녀>.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1978년 작 <만달레이 언덕 앞 소년과 소녀>.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맨해튼 도심을 찍은 1989년 작 <뉴욕>.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맨해튼 도심을 찍은 1989년 작 <뉴욕>.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공

출품작들은 기법적으로도 눈여겨볼 만하다. 별로 쓰지 않는 희귀 기법인 플래티넘(백금) 인화 기법과 색판화처럼 여러 층의 안료들을 인화 과정에서 입히는 다이트랜스퍼 기법으로 찍은 사진들이 함께 나왔기 때문인데, 작가는 “두 기법이 같이 나오는 내 전시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특히 독일 함부르크의 장인을 숱하게 찾아가 70만달러 이상 주고 만들어낸 다이트랜스퍼 기법의 컬러사진들은 묵직한 채색톤이 구보타의 휴머니즘 미학을 더욱 부각시킨다.

구보타는 북한통이다. 70년대부터 20차례 이상 찾아가 작업했고, 김일성 주석 등 권력층과도 친분을 쌓았다. 최근 남-북, 북-미 회담 소식에 “기쁘고 행복하다”면서 그는 덧붙였다. “정치학 전공자의 본능으로는,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느껴져요. 북한 작업은 10년 전 마무리를 했는데,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4월22일까지. (02)720-1524~6.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