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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박수부대, 니들 사람 잘못 골랐다

등록 2005-11-30 16:37수정 2005-12-01 16:31

노승림의무대X파일 - 베이스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지난 주 칼럼에서 다룬 오페라 <나비부인> 초연에서의 비화는 비단 푸치니만 당한 사건이 아니었다. 후세 평론가들은 당시 관객들의 비난과 소동은 다분히 조직적이고 의도적이었던 측면이 없지 않다고 의견을 모은다.

이유는 공연 전부터 시작된 모독성 휘파람 소리와 야유의 함성 때문이다. 실제로 오페라의 본고장이었던 밀라노 극장에는 조직적인 ‘박수부대’가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날 공연의 성공 여부에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때로는 금전을 요구했다.

푸치니가 <나비부인> 초연 당시 이들로부터 뇌물을 요구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은 1901년 밀라노 데뷔를 앞두고 이 박수부대와 직접 대면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샬리아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박수부대는 밀라노뿐 아니라 유럽 도처의 극장에 모두 존재하는 마피아같은 조직이었다. 그들은 조직원들을 극장 이곳저곳에 배치해 야유를 보내거나 소동을 일으켰다.

많은 가수들은 무대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그들이 요구하는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샬리아핀 또한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이들의 방문을 받았고 사례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샬리아핀은 돈을 주는 대신 박수부대를 밀어서 호텔 계단 아래로 굴러 넘어 떨어뜨렸다. 실상 이들 박수부대는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샬리아핀의 괴팍함을 증명하는 일화는 부지기수이다. 그는 리허설은 물론 오페라 공연 도중에도 상대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대 뒤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그에게 설령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사람을 압도하는 커다란 몸집에, 오페라극장 쪽으로부터 지휘자에서부터 배역, 스테프진 선정까지 전권을 위임받을 만큼 특권을 누렸던 샬리아핀에게 그 어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조역들의 어설픈 연기에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샬리아핀은 실제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다음 막에 출연하여 스태프들을 초긴장 상태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샬리아핀도 매니저 휴럭 앞에서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과 다를 바 없었다. 휴럭은 샬리아핀의 성격과 약점을 간파한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매번 공연을 펑크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샬리아핀을 어떻게든 무대 위에 올려놓곤 했다.

한 번은 샬리아핀이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무대에 서지 않으려고 떼를 썼다. 한데 여느 때 같으면 얼르고 달래며 억지로라도 등을 떠다밀던 휴럭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안나오는 목소리로 비난을 받는 것 보다야 계약금 2천달러를 날리는 게 당신에게는 더 좋을 듯하군요.” 휴럭의 예외적인 반응에 당황하고 계약금 2천달러란 말에 귀가 솔깃해진 샬리아핀은 결국 마지막에 공연 취소를 통보하려고 나가는 휴럭의 팔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좀 쉬니까 한결 나은데. 몇 곡 정도는 부를 수 있을 것 같네.”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번 중도에 그만두겠다고 화를 버럭내곤 하는 샬리아핀이었지만 실제로 단 한번도 실제로 공연을 중단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그는 진정한 프로였던 것이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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