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안은미의 ‘렛’ 시리즈

등록 2005-11-30 16:38수정 2005-12-01 16:30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국춤의 새 이정표
안은미의 춤은 눈부시다. ‘사람 사는 저 아래로 내려가려는’ 삶의 의지가 그녀의 무대에 물씬 풍긴다. 인공낙원의 신나는 판타지, 아이처럼 진흙 장난을 치는 듯한 놀이정신이 현실의 슬픔을 딛고서 무구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안은미의 안무가 최근 ‘렛(Let)’ 시리즈를 통해 한국 현대춤의 빛나는 이정표를 세웠다. 근대에 밀어닥친 서구의 충격을 감내해온 한국 춤의 역사에서 서구 중심의 지배 코드를 벗겨내고 모든 몸들을 화해시킨 것이다. 나아가 독자적인 리듬의 문법을 창조하여 우리 시각으로 동서를 가로지르는 몸의 보편성을 지향한 것이다.

이른바 ‘렛’ 시리즈 3부작은 안은미 춤미학의 진경이다. <렛츠 고(Let’s go)>가 인종, 나이, 성별의 차이를 없애지 않으면서 몸의 개성을 평등하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였다면,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Let me change your name)>은 정화된 몸이 뿜어내는 강력한 소용돌이를 통해 현대 테크놀로지 문화에 대한 인간적 접촉과 마술적인 세계를 그려냈다. 특히 후자는 한국이란 뿌리의 무게를 덜어내고 좀 더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리듬의 서사, 혹사의 안무가 단연 압권이다.

그리고 <렛 미 텔 유 썸씽(Let me tell you something)>(11월19일 극장 ‘용’)은 한국의 원형적인 삶의 밑그림에 되먹임시키면서 안은미의 고유한 색채와 판타지 감각을 조율했다. 몸의 내밀한 성찰에서 출발하여 차이와 보편성을 인정하는 동서 만남의 춤, 나아가 안은미 코드를 다시 섞어 화학적 변화를 꾀하는 시도가 마치 꽃비와도 같았다. 주류에서 언더의 자양분을 먹고, 색색의 꽃을 피우듯 그녀의 춤은 화엄적이다. 이쁜 꽃도 있고, 매력적인 꽃도 있고, 생긴 대로 피어난 꽃도 있다. 찢겨진 꽃잎의 꽃, 당한 꽃, 혼자 사랑하는 꽃, 새가 되려는 꽃, 바닥의 벌레처럼 기어가는 꽃, 입 닥치고 춤이나 추겠다는 꽃, 꽃 천지다. 그런 꽃들의 물질적인 아픔, 살에 들어오는 칼날이 느껴지는 춤세상이다. 그런 갖가지 춤들이 모여 다시 삶을 긍정하는 판타지를 꿈꾸니, 일대 장관이다.

꽃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세상에 온통 장미뿐이라면 얼마나 공허하랴. 모란, 장미가 진실인 것처럼 냉이꽃도, 이름없는 들꽃도 진실의 값이 있어서 아름답다. 안은미에게 가장 화려한 것은 화려한 것만 가려모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같은 수용능력에 있다. 버릴 것이 없는 생, 그것이 전작 ‘플리즈(Please)’ 시리즈의 애원에서 ‘렛’ 시리즈의 권유로 바뀌면서 더욱 유쾌하고 쌉쌀해졌다. 걸림없이 동서의 양방향으로 튀면서 동시에 가로질렀다. 독일을 진앙지로 삼아 유럽으로 번져가는 ‘한국 춤의 침공’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다.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