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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일본 오페라 ‘유즈루’

등록 2005-12-07 18:08수정 2005-12-08 16:48

서구음악과 일본 문화 접목

소재·무대 철저히 일본풍
적극적 해외 소개도 배울만

국립오페라단이 ‘한일 우정의 해 2005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마련한 극단 이쿠마의 <유즈루>(저녁 두루미)가 지난 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110분 정도의 짧은 길이에 단 네 명의 가수가 등장할 뿐이지만, 1952년에 작곡된 이래 지금까지 일본 국내외에서 800여 차례가 공연된 명실상부한 현대의 고전이다. 필자는 일본의 근현대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1950년대는 이미 일본이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한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뜻밖에 <유즈루>는 푸치니의 <라보엠>(1896)이나 <나비부인>(1904)과 같은 감미로운 선율과 스트라빈스키의 러시아 낭만주의 작품 <밤 꾀꼬리>나 신고전주의 시대 <병사 이야기>와 같은 곡의 영향이 고스란히 잔존하는 작품이었다. 그 내용도 한 촌부가 화살에 맞은 두루미를 구해주고 그 두루미가 인간으로 변한 아내와 살다가 그녀를 훔쳐보게 되어 이별한다는, 동양 문명권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소재였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설화에 익숙지 않은 서양 사람이라도 백조가 분신한 남편의 묻지 말아야 할 이름을 물어 산통 깨고 마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의 여주인공 엘자나, 인간을 사랑했으나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되는 ‘물의 요정 운디네’의 전설과 쉽게 비교할 수 있었으리라.

이 작품을 통해 일본의 오페라가 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했는지 여부를 가늠하기란 불충분했지만, “처음부터 서양에 통할 수 있는 작품을 쓰려 했다”는 단 이쿠마의 말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았다. 비록 음악은 서구의 모방이었으되, 그 소재는 전통을 가지고 보편에 호소할 수 있는 것을 택했고, 간결한 무대와 선명한 조명 등 연출 전반도 철저히 일본풍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 특유의 절충적인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더구나 <유즈루>는 일찍이 덴온 레이블이 음반과 영상물로 발매해 국내외에 소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의 몇 안 되는 고전 오페라가 점차 잊혀져 가는 가운데, 수많은 창작 오페라가 명멸하는 것을 볼 때 지극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 내년에는 답방의 형식으로 국립오페라단의 <시집가는 날>이 일본에서 초연된다니 음반이나 영상의 제작이 반드시 수반되길 기대해 본다. ‘맹진사 댁 경사’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이 작품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했으며, 음악 또한 우리 고유의 선율을 서양의 어법에 잘 녹인 수작이다. 이번 기회에 일회성을 벗고 진정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연의 기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자료만이 “<투란도트>나 <나비부인>처럼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왜 없는지 모르겠다”는 문화사대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출발점이다.

정준호/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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