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용솟음치는 구룡, 이국 땅에 핀 사무친 아름다움

등록 2018-11-19 05:00수정 2018-11-19 09:58

동양도자미술관 고려청자 특별전
야마토문화관 고려 명품공예전 등
일본 간사이 미술관들 우리 유산 전시

출품작 절반 개인 소장·기증 작품
국내에서 못 보는 최고 수작 수두룩
약탈유물 환수·문화유산 교류 과제
파도를 헤치고 비상하는 아홉마리 용을 돋을새김한 청자정병(야마토문화관 소장). 고려청자전에 나온 최고 걸작 중 하나다.
파도를 헤치고 비상하는 아홉마리 용을 돋을새김한 청자정병(야마토문화관 소장). 고려청자전에 나온 최고 걸작 중 하나다.
정말 우리 옛 장인들이 만든 예술품들인가? 어떻게 건너갔을까?

일본에서 만난 이 땅의 고대·중세 예술품들은 ‘사무친 아름다움’을 내뿜었다. 바다 건너 흘러들어온 운명을 맞은 유물들의 꾸밈새와 미감을 훑으며 놀라움과 안타까움, 뿌듯한 감정이 뒤섞여 일어난다. 고려 귀족들이 품에 넣고다닌 불상집과 허리띠 고정장치에 새겨진 삼존불상, 청동거울을 걸었던 금은상감 걸이대의 현란한 장식, 신라 귀족들 방에 깔렸던 푹신한 꽃무늬 양탄자는 극치의 신앙과 농익은 미의식을 전해주었다. 어린 동자와 세발 달린 새, 방아 찧는 달토끼를 비췻빛 표면에 그려넣은 고려청자 주전자와 옥색 하늘 같은 찻잔 앞에선 자연에 뿌리내린 한민족 특유의 아취에 젖어들었다.

이 낯설고도 반가운 유물들이 요즘 일본 간사이 지역 전시장에 즐비하다.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선조들의 본거지였던 간사이에서 한반도 문화 유산들의 전시 바람이 일고있다. 올해가 고려왕조 개국 1100주년을 맞는 기년이란 점이 계기가 됐다. 지난 9월부터 현지 공립·사립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와 신라·백제, 조선의 찬란한 문화유산 명품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이 오사카와 나라, 교토에서 잇따라 막을 올렸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과 나라현의 야마토분가칸(대화문화관)·네이라쿠미술관이 협력한 고려시대 도자기와 금속공예 연계 전시를 필두로, 교토 고려미술관의 개관 30돌 특별전, 나라국립박물관이 열고 있는 일본 왕실의 옛 보물창고 정창원 유물 특별전, 아스카자료관의 한일 고대 공방 관련 전시들이 잇따라 열렸거나 진행중이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최고 수준의 현지 전시들을 이달초 사흘간 돌아봤다.

나뭇가지를 오르는 동자가 그려진 청자상감 주전자. 일본 기업가 아타카의 컬렉션 중 일부다.
나뭇가지를 오르는 동자가 그려진 청자상감 주전자. 일본 기업가 아타카의 컬렉션 중 일부다.
■ 다시 보기 힘든 고려청자 명품잔치 오사카 시내 오가와강의 섬 나카노시마에 자리한 동양도자미술관에서는 국외 고려청자들의 최고 명품 잔치인 ‘고려청자’ 특별전(25일까지)이 펼쳐지고 있다. 파도를 헤치면서 아홉마리 용이 꿈틀거리며 비상하는 구룡정병과 하늘빛 표면에 연잎과 당초무늬를 정교하게 오목새김한 청자정병, 귀여운 동자가 수풀 속에서 노는 정경을 그린 상감청자 주전자 등 일본 중요문화재 3점을 비롯해 비췻빛을 뽐내는 다채로운 기형의 청자 수작 240여점이 나왔다. 전시 초점은 중국 송나라 사람들이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했던 청자의 비색을 온전히 보여주는데 맞춰졌다. 기획자인 정은진 학예사는 “30여년만에 차려진 일본 고려청자 전시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된다”며 “열을 내지 않는 첨단 엘이디 조명을 통해 차 도구, 생활용기, 종교의례용으로 쓰인 고려청자의 은은한 자연색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360도 돌아가는 회전판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청자상감운학문 완의 고고한 자태와 공작무늬 접시의 꿈결 같은 비췻빛 때깔을 볼 수 있다. 붉은색 안료를 써서 구운 청자상감진사채모란은 아름다운 꽃몽오리의 붉고 선연한 인상이 하늘색 표면색과 어울려 잊지못할 감흥을 안겨준다.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는 토끼와 태양을 상징하는 세 다리 달린 새 문양이 잘록한 윗부분에 그려져 있고, 아래엔 포도나무 아래 동자의 모습이 들어간 표주박 모양 상감 주전자는 문양과 기형 모두 절정기 고려청자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시 대표작으로 꼽히는 구룡정병은 세계적으로 가장 이름높은 고려청자의 걸작으로 일본의 거물 컬렉터들이 치열한 수집경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나라현의 대찰 도다이지 옆에 자리한 네이라쿠 미술관의 ‘비색과 상감의 고려청자·인화문의 조선 분청사기’전(내년 2월24일까지)은 50여점의 고려청자와 조선초 분청사기들이 나왔다. 고려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한반도 도자사의 변천 양상을 재조명한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음식 담는 푼주그릇처럼 입 대는 부분이 휘어진 분청사기 그릇과 술장군의 해학적 면모를 비색 청자병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가지를 든 동자의 앙증맞은 모습이 그려진 작은 청자그릇과 쌍어문 대접도 놓칠 수 없는 감상거리다. 인근 도다이지의 남대문과 와카쿠사 산의 절경을 오롯이 정원의 경치로 끌어들인 차경의 진수를 보여주는 일본전통 정원, 이스이엔을 함께 산책하는 흥취도 누릴 수 있다.

금 입힌 은제불감(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안에 수호신과 관음보살살이 새겨졌다. 야마토문화관의 고려금속공예전 출품작.
금 입힌 은제불감(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안에 수호신과 관음보살살이 새겨졌다. 야마토문화관의 고려금속공예전 출품작.
■ 몰랐던 고려 금속공예의 걸작들 줄줄이 부처를 모신 작은 집인 불감은 겨우 10cm밖에 안된다. 그 안에 부처를 지키는 집금강신장과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관객을 쳐다본다. 지난 11일 전시가 끝난 나라현 야마토 분가칸의 고려금속공예 명품전 ‘건국 1100년 고려-금속공예의 광채와 신앙’전은 국내에는 없는 고려 금속공예 명품들을 집대성했다. 타키 아사코 학예사가 일본 각지의 공사립 컬렉션을 뒤져 최고의 명품들을 추려 모은 이번 전시는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새의 걸작들로 채워졌다. 국립도쿄박물관의 수장고에서 나온 불감 유물들과 금은상감이 촘촘하게 들어간 거울걸이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서역·중국의 공예문화를 개방적으로 수용한 고려 미술의 국제성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법과 도상을 개발한 창의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용과 구름을 은입사로 새겨넣은 적(피리)의 문양과 섬세한 표정 묘사가 일품인 거울 뒷면의 부처상 묘사는 압권이다.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금물로 섬세하게 묘사한 변상도와 정연하게 한치의 틀림없이 옮겨쓴 대방광불화엄경 사경본 또한 놓칠 수 없다. 지난 2일 이 사경을 한참동안 지켜본 일본 고베의 여대생 코지마 다마키는 “무언가 강력한 전통과 신앙의 힘이 발현된 듯하다. 발걸음을 못떼게하는 시각적 흡인력이 있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1929년 만든 백제박사 왕인의 청자상. 일본 장인이 바친 것으로 고려청자전에 나왔다.
1929년 만든 백제박사 왕인의 청자상. 일본 장인이 바친 것으로 고려청자전에 나왔다.
■ 신라 귀족집에 깔린 양탄자와 숟가락, 사발, 가위들 지난 12일 끝난 나라국립박물관의 70회 정창원 특별전에는 신라 유물들이 수십년만에 대규모로 처음 공개됐다. 왕실 보물창고 정창원에 소장된 신라 유물들은 익히 학계에 알려져 있지만, 자초롱댁이라는 신라 귀족집에 깔린 꽃무늬 양탄자와 ‘사파리’라고 부르는 놋그릇 사발과 숟가락, 경주 안압지에서도 나온 것과 비슷하게 생긴 가위들이 모처럼 선보였다. 국내 가야금의 가장 오래된 실물로 유명한 신라금도 고니에 줄 달린 모습을 변함없이 선보이면서 자태를 빛내고 있었다.

신라 유물들의 대거 출품을 맞아 2일 오후 바로 옆 도다이지 박물관에서 열린 ‘신라유물과 정창원’ 심포지엄에서는 정창원 소장 한반도계 유물들에 대한 한일 학계의 엇갈리는 시선도 표출됐다. 발제를 맡은 니시카와 아키히코 정창원 관리사무소장은 “주요 소장품들의 신라, 백제 유래설을 제기하는 한국 학계의 견해에 대해 명확하게 문서나 유물로 실증된 것은 별로 없어 학문적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반면, 한국 학계를 대표해 나온 공예사연구자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사하리’ 놋그릇은 명칭 자체가 명백히 한국어에서 나왔다고 고증된 것이며, 유리기·금속용기 등 소장품 상당수도 최근 국내 백제 신라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과 문양 면에서 연관관계가 명백히 입증된다”고 말했다. 박물관 쪽도 신라 놋그릇의 명칭 ‘사하리’가 페르시아어에서 기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출품작 설명을 붙여 한국 학계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고려청자전에 나온 나한상. 푸른빛 유색을 통해 수행자의 기운이 색다르게 전해져온다.
고려청자전에 나온 나한상. 푸른빛 유색을 통해 수행자의 기운이 색다르게 전해져온다.
■ 한반도 장인들 따라 배운 고대 일본 장인들 6~7세기 백제 등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본거지였던 나라현 남쪽의 아스카 평원에서는 백제 장인들이 당시 일본 공방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유물전시가 차려졌다. 아스카자료관의 ‘되살아난 아스카의 공방-일한의 기술교류를 찾아서’전(12월2일까지)이다. ‘아스카이케’라는 6~7세기 현지 공방유적에서 출토된 유리, 금속기 등의 유물들이 익산의 미륵사, 왕궁리 궁터 공방유적의 직접적 영향을 받아 형성됐음을 두 나라의 출토유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왕궁리와 익산 미륵사터에서 나온 유리 파편과 유리제작 토기 용기들을 패널로 보여주고 이와 연관된 아스카 공방의 다양한 용기 유물을 비교해 놓았다. 좁은 공간이지만, 벽면과 바닥 등을 두루 활용해 유리 용기, 칠하는 도구, 관련 문서목간 등까지 치밀한 얼개로 채워 한눈에 교류 양상을 실감하게 하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대여섯군데의 고려 신라 문화유산 전시를 돌아보고 나면, 일본 내 방대한 한반도 유산 컬렉션의 양과 수준, 깊이를 절감하게 된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등 현지 3개 박물관이 연합한 고려왕조 1100주년 전시에서도 국내 유물을 대여한 것이 하나도 없다. 출품작 중 절반 이상이 사립 컬렉션과 기증 작품이며 국내 컬렉션을 질적으로 능가하는 최고 수준의 비장품들이 수두룩하다. 앞으로도 환수를 포함한 문화재 교류에서 이웃 일본과 더욱 밀접하게 소통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정창원 특별전에서 관객들이 출품된 신라금을 살펴보고 있다.
정창원 특별전에서 관객들이 출품된 신라금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 오사카·나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