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퉤퉤’ 분노 뱉었다, ‘후유’ 잠시 쉬련다
로큰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존재를 힙합계에서 뽑으라면 에미넴(본명 마샬 메더스·33)이다. 흑인의 감각을 백인의 몸에 지녔기 때문이다. 이 이단아는 침과 똥으로도 예술을 빚어내는 인물이다. 건조하고 공격적인 흐름과 운율, 솔직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그려내는 상황은 폭력으로의 매혹적인 도취를 불러왔다.
1997년 그의 데뷔앨범 격인 <슬림 쉐이디 엘피>부터 2004년 <앙코르>까지 인기곡을 그러모으고 신곡 3곡을 보탠 그의 베스트 앨범 <커튼 콜>이 최근 발매됐다. 전성기 때 베스트 앨범 나오는 게 대수냐 싶지만 그래도 관심을 끄는 까닭은 그가 꾸준히 은퇴설에 휘말려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에미넴은 지난 여름 “황당한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팬들은 앨범 제목에서마저 불길한 조짐을 찾고 지레 불안해 했다. <슬림 쉐이디 엘피>가 자신의 분신을 내세운 것이라면, <마샬 매더스 엘피>는 존재를 당당히 드러낸 앨범이며, <에미넴 쇼>는 본격적인 쇼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지난 앨범 <앙코르>에 이어 무대 인사격인 <커튼 콜>은 은퇴에 대한 암시가 아니냐는 것이다. <앙코르>의 마지막을 그는 환호하는 군중에 총알 세례를 퍼붓는 소리로 장식했다. 이 앨범 수록곡인 ‘레인맨’에는 스타가 된 자신에 대한 냉소가 담뿍 담겼다. “내 이름을 잊었어. 내 영혼은 악마가 지배해버렸지.”(‘레인맨’)
이번 <커튼 콜>에 들어간 새로운 곡 ‘웬 아임 건’은 불안을 부추긴다. 딸 헤일리와 에미넴의 대화 형식을 빌려온 이 곡에서 그는 스타와 아버지 역할 사이 갈등을 드러낸다. “팔 한쪽을 잘라 줄 수 있을 정도로 누굴 사랑해 본적 있어?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주범이라면?”
물론 사서 하는 괜한 걱정일 수도 있다. 환호하는 군중에 “입 닥쳐”라고 소리치며 시작하는 이 앨범엔 야한 욕설과 설정 탓에 미성년자 청취불가를 받은 ‘팩’도 들어있다. ‘쉐이크 댓’은 성적 메시지와 야유를 운율로 갈무리해내는 에미넴의 장기가 묻어난다.
하여간 비교적 확실해 보이는 건 이번 베스트 앨범이 에미넴 음악 여정 가운데 적어도 한 단락의 마무리를 알리는 것이란 점이다. 이제까지 그의 음악이 지닌 에너지는 억눌린 분노에서 터져 나왔다.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 <8마일>이나 그의 노래 ‘스탄’에서 그려내듯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가난한 동네에서 대책 없는 어머니와 살며 자살 기도, 알코올 의존 등 캄캄한 터널을 지나왔다. 기댈 곳도 없는데 덜컥 아버지가 돼 우유값 걱정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그는 랩으로 뱉어냈다.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엿이나 바꿔먹으라는 태도로 동성애 혐오, 부인 살해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저주를 드러내는가 하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마이클 잭슨 등 스타들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리고 현재 그는 더 이상 미국사회의 변방에 있지 않다. 그의 욕망에 채워졌던 족쇄는 풀렸다. 그레미상을 8차례 휩쓸었고 돈방석에 앉았다. ‘쉐이디 레코드’를 소유했으며 힙합 음악인 ‘50센트’를 발굴한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최근엔 의류 브랜드도 내놨다. 그의 이런 상황 변화가 은퇴설의 근원이다.
이제 그는 “휴식을 원한다”고 했고, 이번 앨범은 적어도 분노의 양질 변화를 알리는 쉼표인 셈이다. 어쨌든 세상엔 욕할 것들이 널려있고 대중은 그의 가학적 독설을 열렬히 바라고 있으니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접기는 아직 쉽지 않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유니버설 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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