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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전설적 형제밴드 ‘산울림’ 송년음악연 연습현장

등록 2005-12-28 17:17수정 2005-12-29 15:26

[100℃르포] ‘대기업 간부형’ 어른 셋이 우당탕 타임머신 타고 30년전으로 뿅∼

크리스마스 때 잠깐 올라갔던 수은주가 다시 뚝 떨어진 26일 낮. 종종걸음으로 마포구 합정동의 한 스튜디오 지하로 뛰어들어가니 털옷을 입은 김창완(51)씨가 미처 인사도 할 사이도 없이 기자의 손을 덥썩 잡는다. “아휴, 디게 추운가 보다. 내 손 따뜻하죠?” 체온보다 더 따뜻한 웃음이 내년으로 결성 30년, 한국대중음악계의 ‘전설적인’ 밴드 산울림을 만나러 온 기자의 긴장감을 순식간에 녹인다.

그러나 그 여유도 잠시, 연습실 안에는 점잖은 ‘대기업 간부형’ 어른 두분이 다시 기자를 주눅들게 만든다. 산울림 멤버 김창훈(49)씨와 김창익(47)씨. 31일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펼칠 ‘산울림 송년 음악연’ 준비를 위해 24일 저녁 각각 미국 엘에이와 캐나다 밴쿠버에서 날아왔다. 그렇게 삼형제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연습실에서 보냈다.

“아휴, 디게 추운가 보다”

“옛날에는 우리 삼형제가 산울림을 만들었지만 올해는 밴드 산울림이 삼형제를 묶어줬어요. 작은 형과 제가 외국에 나간 뒤로 올해 만큼 우리 형제가 자주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김창익) 산울림은 지난 5월 8년만의 한국공연과 10월 미국공연을 했다. “지난 5월 공연 준비 때는 오랜만이라 긴장도 많이 되고 연습 부담도 컸는데 지금은 한결 마음이 가볍죠.”(김창훈)


그러나 웬걸, 10집 앨범의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로 연습이 시작되자 두 동생의 표정엔 긴장감이 서린다. 예의 이웃집 아저씨의 선한 웃음이 ‘큰 형’의 얼굴에서 싹 지워진 건 차라리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 드럼 스틱을 쥔 ‘막내’의 눈길은 한 순간도 ‘큰 형’의 표정에서 벗어나지 않고,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베이스 기타를 든 ‘작은 형’의 말투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여기 좀 다시 한번 맞춰봤으면 좋겠는데요.” “그거 맞출 때까지 어떻게 노래하냐. 안되면 음반 들으면서 너희 둘이 맞춰. 할 수 없어. 다음 뭐지?” ‘큰 형’의 추상같은 말투와 순한 아이처럼 조용한 동생들. 기자는 왠지 타임머신을 타고 삼십년 전, 아니 사십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작은 골방에서 열심히 “만원짜리” 기타를 열심히 퉁기는 고등학생 두 형과 “셋 다 기타치면 재미없다는 큰 형의 권유(?), 강압(?)으로 수저통을 두드리던” 열네살 소년의 모습이 세 사람의 모습에 포개졌다.

“한창 때 평론가들이 큰 형인 내가 폭군이 아니냐고 말도 많이 했어요.(웃음) 근데 둘째랑 내 음악은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한 사람의 일방적인 카리스마로 끌고 나갈 수 없는 밴드였죠.” “과연 동생분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딴지를 거니 “얘들아 나 나갔다 올께”라며 슬쩍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지 형제기 때문에 삼십년을 이어올 수는 없었겠지만 “다른 밴드나 세션들과 연주할 때는 느낄 수 없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원초적 느낌들이 삼형제 연주에는 살아 있다”는 김창완씨의 말에서 산울림의 ‘장수 비결’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막내는 언제나 중재자

익숙한 몇곡의 멜로디가 지나간 뒤 낯선 리듬이 시작된다. 내년에 발표할 14집 신보의 새 노래 몇곡이 이번 공연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강한 비트의 ‘나, 원, 참’이 끝난 뒤 둘째 창훈씨가 묻는다. “더 좋은 노래들도 많은 데 왜 이걸 하죠? (다른 신곡들은) 감추려는 건가요?” “작은 형도 부를 거 있잖아요. 작은 형 것도 하나 더 하자.” “직접 아이를 낳는(노래를 만드는) 형들에 비하면 난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늘 겸손한 자기소개를 하는 ‘막내’는 언제나 두 ‘작가’ 사이에 흐르는 예술적 긴장의 전류를 낮추는 중재자 역할이다. ‘둘째’가 자작곡의 ‘화초’와 ‘아침일기’를 불러본다. 눈을 감은 채 미간 깊숙히 주름을 만들고 간간이 기타줄을 퉁기던 ‘큰 형’의 승인이 떨어진다. “이걸(‘아침일기’) 해라. ‘화초’는 창법이 ‘황무지’랑 좀 비슷하고 말야.” 베이스 기타 연주로만 외로이 ‘시연’되던 ‘아침일기’가 다시 연주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드럼소리와 리드 기타의 연주가 입혀진다. “음… 전주에 스트링을 좀 넣고, 건반이 들어가면 될 같다.” 작사·작곡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멤버의 공동작업으로 음악을 완성하는 ‘밴드’음악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도 대 밴드 산울림의 음악이 창조되고 있는 순간을 지켜본다는 느낌이 자가발전해 감격으로 다가왔다.

‘산울림’ 송년음악연
‘산울림’ 송년음악연


“제일 쑥스러운 노래가 뭐게요?”

“옛날에는 왜 그렇게 안하무인인지, 뻣뻣하기만 하고 그냥 우리가 잘 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대중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현실만으로 가슴 떨리고 고마운데 젊을 때는 그걸 잘 몰랐죠.” 3부로 나눠서 진행할 이번 공연에는 새 노래 뿐 아니라 산울림의 오랜 ‘고전’들을 서른 곡 가까이 선사할 예정이다. “20대 초반에 만들었던 노래를 쉰 줄에 하려니까 꼭 촌스런 옛날 사진 보는 것처럼 쑥스럽고 또 그 쑥스러움이 재미를 주기도 해요. 그 중에서도 제일 쑥스러운 게 무슨 노래인 줄 아세요? ‘내게 사랑은 너무 써’인데 부르는 나도 괴롭지만 관객들은 더 괴로워 해요(웃음). 그렇게 밴드와 관객이 같이 지나간 세월을 같이 반추하는 거죠. 그런 기분을 관객과 누릴 수 있는 우리도 행운아지만 관객에게도 같이 나이들고 같이 기억할 수 있는 우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닐까요?”(김창완) 공연문의 (02)322-7221.

글·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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