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홀로 무대에 남아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한국어로 인사했다. 메이는 “같이 불러달라”고 요청하며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시작했다. 기타 연주는 물론 노래까지 직접 하는 메이의 무대에 2만여 명의 관객들도 ‘떼창’으로 화답했다. 메이는 관객들의 노래에 감동하며 연신 “어메이징! 원더풀” 등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특히 관객들은 휴대폰 플래시에 형형색색의 스티커를 붙여 그를 비추며 고척돔을 반짝반짝하게 물들였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스크린에 1991년 세상을 떠난 프레디 머큐리가 등장했다. 한 화면에 메이와 머큐리가 함께 담겨 마치 같이 부르는 듯한 모습이 연출돼 감동을 안겼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퀸이 1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5 퀸’으로 한국 팬과 다시 만났다. 2014년 8월 록 페스티벌 ‘슈퍼소닉 2014’의 헤드라이너로 서울에서 공연했지만, 단독으로 내한공연을 한 것은 지난 1971년 그룹 결성 이래 처음이다. 이번 공연은 19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록의 전설’로 알려진 밴드지만 젊은 층엔 다소 낯설었기에 2014년 공연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8년 10월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퀸은 한국에서 젊은 층에까지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1970~80년대 이들의 전성기를 담은 이 음악 영화가 6개월 간 장기 흥행하며 ‘퀸치광이(퀸+미치광이)’ ‘퀸망진창(퀸+엉망진창)’ 등 열혈 팬덤을 양성했다.
이날 관객 중에도 20대∼30대 팬들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자녀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40대 여성, 대학생 아들과 함께 온 50대 부모도 있었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이번 공연의 예매 관객 성비로는 여성이 높았고, 2030 세대가 무려 73%를 차지했다.
퀸은 프레디 머큐리(보컬), 브라이언 메이(기타), 로저 테일러(드럼), 존 디컨(베이스)으로 구성됐던 4인조 밴드로 1971년에 결성됐다. 1991년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고, 1997년 디컨은 은퇴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내한공연은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애덤 램버트가 머큐리를 대신해 보컬로 나섰다. 2011년부터 머큐리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램버트가 머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그러나 머큐리가 함께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도, 램버트의 개성과 젊은 감성의 해석이 더해진 이번 공연은 그간의 우려를 한 방에 불식시켰다.
‘이누엔도’로 무대의 막을 올린 퀸은 ‘킵 유어 셀프 얼라이브’로 무대로 이어갔다. 1973년 발표한 퀸의 데뷔 앨범에 실린 이 노래는 브라이언 메이가 작곡했는데, 발표 당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데뷔 초 하드록 스타일을 맛볼 수 있는 곡이다.
퀸의 첫 글로벌 히트곡인 ‘킬러 퀸’이 흘러나오자, 공연장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이 곡은 발표 당시 영국 2위, 미국 12위에 올랐던 곡이다. 화려한 멜로디와 여러 층으로 겹쳐 쌓은 화음이 어우러졌다.
‘돈 스톱 미 나우’의 전주가 나오자, 스탠딩 구역이 아닌 의자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을 자유롭게 흔들던 관객들은 ‘썸 바디 투 러브’에선 함께 손을 흔들며 ‘떼창’했다.
머큐리가 프랑스의 자전거 대회 뚜르 드 프랑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바이사이클 레이스’에서 램버트는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바이사이클은 반복되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강한 노래다. 이어진 ‘아이 원트 잇 올’에선 메이의 기타 솔로 연주가 돋보였다.
퀸이 ‘라디오 가가’를 부를 땐 고척돔이 박수 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이 노래는 11집 <더 웍스>에 실린 곡으로 로저 테일러가 3살 배기 아들의 “라디오 카카”라는 옹알이를 듣고 만든 노래로, 공연 때마다 관객의 하나 된 박수 소리를 자아내는 곡이다.
이후 ‘더 쇼 머스트 고 온’에선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머큐리가 살아있을 때 발표된 퀸의 마지막 정규 앨범에 담긴 노래로, 이 노래가 싱글로 발표되고 한 달 후에 머큐리가 세상을 떠났기에 팬들로선 잊을 수 없는 노래다. 녹음할 당시 머큐리는 걷는 것 조차 어려울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보드카 한 잔을 들이킨 후 한번 만에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프레디 모습이 떠오르는 곡이다.
마지막 노래는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이후 앙코르 곡 순서에서는 프레디의 모습이 다시 스크린에 비쳤다. ‘위 윌 록 유’를 부르기에 앞서 프레디가 “에-오, 에-오!" 하고 외쳤고, 관객도 따라 외쳤다. 메이는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와 관객들의 함성을 끌어냈다. 공연은 ‘위 아더 챔피언’을 부르며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난 후, 만난 관객 김명진씨는 "램버트만의 젊고 새로운 해석이 돋보이면서도, 머큐리를 기리며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박희아씨는 "이미 70대가 된 노장 테일러와 메이의 실력이 건재해서 기뻤고, 램버트의 개성도 돋보였다"고 말했다.
퀸의 음악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한 쇼는 계속될 것이다. ‘돈 스탑 미 나우, 더 쇼 머스트 고 온!’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