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4리즘’ 낸 박선주
가수이자 창작자인 이상은(36)과 박선주(35), 시작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데 걸어온 길은 사뭇 다르다. 각각 1988년과 89년 강변가요제에서 데뷔했다. 쾌활한 ‘담다디’로 대중을 사로잡은 이상은은 앨범 <공무도하가> 등으로 독특한 음악 세계를 세웠다. 구슬픈 ‘귀로’로 이름을 알린 박선주는 발라드부터 힙합까지 선보이더니 ‘디제이디오시’ 첫 앨범 <슈퍼맨의 비애>의 프로듀서가 됐다. 이후 그가 만든 인기곡 명부엔 ‘리쌍’의 ‘인생은 아름다워’ 등이 올랐다. 김범수, ‘동방신기’, 유진 등 스타들의 노래 선생이기도 했다. 이상은이 내면의 깊은 우물을 길어 올렸다면, 박선주는 대중의 흐름을 읽고 영토를 넓혀갔다. 김범수·동방신기 등 혹독하게 노래 가르치던
대중적인 감각 한껏 발휘 박선주가 11년만에 내놓은 앨범 <아4리즘>은 그가 적어도 한번씩은 밟아본 음악 영토의 넓이를 보여준다. 아르앤비·록 느낌이 나는 발라드, 일렉트로니카, 재즈까지 옹골차게 담았다. 유독 힙합만 빠졌다. “‘드렁큰타이거’, ‘리쌍’ 등 ‘무브먼트 크루’와 친하니까 이들이 참여한 힙합이 들어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잖아요. 그게 싫었어요. 10년 동안 좋아했던 것들을 다 넣었어요. 할 이야기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결과물이죠.” 겉만 번지르르한 앨범은 아니다. 각 장르의 익숙한 코드들을 대충 따서 얽지 않아 속이 꽉 찬 편이다. 지루해질만 하면 ‘이건 어때요’라고 묻는 듯 다른 빛깔 목소리를 들려준다. 산만해질 수 있는 조각들을 유연한 다리로 이었다. 록발라드 ‘적어도 넌 나빴다’에서 보사노바 ‘뉴욕에서’로 넘어갈 때 광장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끼어드는 식이다. 곡 하나씩 내려받아 듣는 추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앨범 전체를 하나로 엮으려는 욕심이 또렷하다. 김범수(‘남과 여’), 윤미래, 정인(‘여3’) 등이 목소리를 보탰다. 그가 가르치거나 곡을 주며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이다. “김범수는 원래 박치·음치였어요. 그런데 목소리 톤과 음역이 놀라웠어요. 전 이기적이고 남한텐 큰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김범수는 갈고 닦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하는, 재능 넘치는 사람이었죠.” 그는 혹독한 선생이다. 산만하다 싶으면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낸다고 한다. 그가 홀로 거쳐갔던 과정이다. 소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산만한 사람. 그가 묘사한 자신이다. 경찰공무원인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 모두 그가 가수되는 걸 못마땅해 했다. 혼자 고 2때부터 작곡을 했고 한강 다리 밑에서 노래 연습을 했다. 영어테이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팝송을 녹음해 물려준 오빠 정도가 조력자 축에 낀다. 가수로 뜰 때쯤 오락프로그램 여기저기 출연하다 ‘아니다’ 싶어 미국으로 유학갔다. 영어 못했고, 돈도 없어 고생길이었다. 이후 작곡자 겸 프로듀서로 잘 나갈 때 일본으로 훌쩍 떠나 재즈 보컬이 되기도 했다. 그는 “잃을 게 없으니까 용감했다”고 말했다. 박선주는 철저하게 자신을 닥달하는 사람이지만 순수한 예술적 완성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삶도 예술도 경제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같은 순수함보다 목적과 계획이 뚜렷한 프로가 좋아요. 음악 하나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잖아요. 엔터테이너로 인기를 끄는 것도 실력이죠.” 대중의 감수성에 귀를 바짝 대고 있는 그는 이번에 그만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팔방미인의 꽉 찬 실력을 발휘했다. 앞으로 그는 3~4개 앨범을 내며 그 너비에 깊이와 색깔을 보탤 예정이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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