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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비디오 작가 이용백씨, 이시대 시각예술의 운명을 보라

등록 2006-01-04 20:55수정 2006-01-04 21:04

이용백씨의 비디오 근작 <앤젤 솔져> 상영모습(아래 사진)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전사의 꽃무늬 군복. 요셉 보이스라는 이름표와 컴퓨터 아이콘 표식을 달았다.
이용백씨의 비디오 근작 <앤젤 솔져> 상영모습(아래 사진)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전사의 꽃무늬 군복. 요셉 보이스라는 이름표와 컴퓨터 아이콘 표식을 달았다.
인공과 자연-복제와 실제사이의 전장
비디오 작가 이용백씨, 6년만에 ‘루프’ 서 개인전

지금 서울 홍대앞 대안공간 루프에 가면 아래 예문에 제시된 ‘설정’들을 비디오 영상으로 틀어준다.

#1. 알록달록 만발한 꽃밭 속을 꽃무늬 군복을 입은 전사가 총 들고 느릿느릿 전진한다. 총과 얼굴, 헬멧까지 온통 꽃으로 치장한 전사는 동물로 돌연변이한 꽃처럼 가다서다를 되풀이한다.

#2. 비닐자루에 포장된 알몸 주검을 비치는 엘시디 영상을 다른 영상 모니터 안의 어린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들은 천진난만하게 외친다. “죽었다!” “죽었다!”

#3. 거대한 풀장 물 속에 여러 꽃들이 떠다닌다. 꽃으로 치장한 전사가 산소호흡기를 악물고 총을 든 채 그 꽃들을 따라 다닌다. 얼마 뒤 그들은 사라져버린다.

그로테스크, 엽기의 아름다움 만들기. 루프에서 6년만에 개인전 ‘앤젤 솔져’(17일까지)를 차린 비디오 작가 이용백씨의 영상들은 소재의 이질감이 주는 충격이 먼저 눈을 때린다. 천으로 만든 아름다운 인조 꽃잎과 전사의 총, 아이와 썩어가는 주검 등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질적 이미지들을 작가는 공들여 대비하고 조합시켰다.



천으로 꽃들을 일일이 만들고 매어단 그 작업들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 시대 시각예술의 운명이다. 등장하는 꽃이나 주검, 군복 등의 이미지들이 모두 인공, 한마디로 가짜재료 복제물이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가상 이미지가 더욱 힘있는 실체처럼 행세하는 디지털 문명사회에서 미술이 애지중지했던 ‘오리지널한’ 형상은 더이상 의지의 깃대가 될 수 없다고 영상들은 엽기로 은유한다. 녹음방초와 꽃병사가 나오는 <앤젤 솔져>의 전사 군복(별도 전시되어 있다)을 자세히 보면 이름표에 백남준, 뒤샹, 보이스 등 현대미술 대가들이 적혀있고, 계급·부대표식에 컴퓨터 아이콘이 적혀 있다. 대가들 또한 인공과 자연, 복제와 실제 사이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란 뜻인가. 아이들의 모습과 컴퓨터의 블루톤 화면이 반복되어 윗 영상에 나타나면서 아래쪽 영상의 주검을 응시하는 <윈도우 인 윈도우>또한 복제의 힘에 눌려 실체가 죽어버렸다는 선고에 다름아니다.

80년대말 전위 작가 그룹 ‘황금사과’의 멤버였던 이씨는 악전고투중인 국내 비디오아트 분야에서 자의식을 견지해온 작가로 손꼽힌다. 단순 테크놀로지나 특정한 이미지에 빠지지 않고, 실체와 복제의 문제들을 계속 낯선 형식으로 변주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난해한 구도이긴 하지만,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심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이다. 작가는 “바둑에서 포석을 이어 집을 짓듯 지금 작업들은 내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한 개의 파편일 뿐”이라고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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